개인주의와 사주 (feat. 거피취차)
- 사주명리학/생활 속 사주명리
- 2022. 2. 28.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제가 깨고자 하는 것은
사주를 미신으로 보는 시각보다,
사주를 고루하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블로그의 구성을 최대한 깔끔하게 가져가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한자 사용을 자제한 것은
모두 사주를 고루한 옛것으로 보는 편견을 깨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지나간 가치와 새롭게 대두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루한 것과 추구해야 할 새로운 것 중,
여러분이 생각하는 철학과 종교, 신념, 가치관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지만 "나"는 가난합니다.
"나"는 절대적인 가난이 아닌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울분에 가득차 있습니다.
모두가 가난한 시기에는 대두되지 않았던 문제가 등장했고 중요해졌습니다.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이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부유해지면서 "나"를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나"는 국가적 성취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요?
애국심에 도취되는 순간은 잠시이고, "나"의 우울은 오래도록 지속됩니다.
오히려 국가적 성취가 빛날수록 나의 어둠은 더욱 짙어집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을 떠올리시겠지만,
이와 같은
국가적 성취와 개인의 행복의 괴리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의 불행에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위해 미국과 독일의 젊은 청년들이 피를 흘려주지 않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런 시대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 적진의 수도까지 진군한 어린 러시아군 병사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고 고백하며 짓는 억울한 표정에서 저는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더이상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허울이 개인을 포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체의 시대는 갔고, 개인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미 "여러분 부자되세요~"라는 광고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슬그머니 우리들 곁을 맴돌던 그것은,
초등학생에게 주식 투자책을 쥐어주는 어른들을 통해 공고하게 우리들 곁에 자리잡았습니다.
군중의 시대, 광장의 시대, 연설의 시대, 이념의 시대
즉, 모두의 시대는 가고
이제 "나"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럼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의지하고 있는 그것<철학과 종교, 신념, 가치관>은
모두의 것입니까? //
개인의 것입니까?
모두에게 두루뭉술한 진리를 주는 것입니까? //
"나"에게 딱 맞춘 조언을 주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습니까? //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멀리(彼-저기) 있습니까? //
가까이(此-여기) 있습니까?
멀리 있다면 버리십시오. (去彼)
가까이 있다면 취하십시오. (取此)
去彼取此(거피취차) <멀리 있는 것을 버리고, 가까이 있는 것을 취하다>
- 거시적이고 피상적인 가치관을 멀리하고, 미시적이고 현실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태도
도덕경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去彼取此를 화두로 삼고 살아가다 저는 사주명리를 발견했습니다.
옛것이 좋고,
고루한 것이 좋고,
무속이 좋고,
미신이 좋아서 사주명리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사주 명리가 진정 개인의 현실에 맞춤형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주명리 공부에 매진한 것입니다.
사주명리의 모든 철학과 이론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개인의 삶,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입니다.
음양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국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개인들을 위한 개인 맞춤형 철학이 바로 사주명리입니다.
개인주의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철학이 바로 사주명리인 것입니다.
도덕경도, 사주명리도 고루하지 않습니다.
고루한 것은 "개별자로써의 온전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오늘도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는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모두 거피취차 하시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