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삶이란? (feat. 관성을 쓰다.)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 현묘입니다.

 

오늘은 "어른의 삶이란?"을 주제로 말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시작하는 지금의 마음은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고 고군분투 하는 분들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데,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1. 어른의 삶이란?

어른의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고리타분한 질문이기도 하고, 

답을 들으면 그 사람의 성향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철학의 바로미터가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어른이란 뭔지?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질문에 저도 모르게 이런 답변이 나와버렸습니다.

 

바람에 흘려보내듯 가볍게 말해놓고 잊고 있었는데,

후배가 그 말을 가슴 속에 담고 있다가 다시 말을 해서 

"내가 그랬다고?" 하면서 허허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의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제 답변은 이랬습니다.

 

첫째, "내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지, 그렇지 않은 행동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
둘째, "내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른의 삶이다."

 

2. 첫째, 자기객관화

내 행동의 옮고 그름을 아는 것은 쉬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명확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야지만 행동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시각에서 스스로 여러번 점검해 보아야 본인의 행동의 정확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객관화는 거울을 여러개 비춰보고, 끊임없이 점검해야지만 가능한 영역입니다. 

 

 

제가 말하는 옳고 그름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단순한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것이 관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곧 내 행동의 잘잘못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천둥벌거숭이 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이만 먹었을뿐,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이며, 이 행동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이런분들을 칭하는 용어가 있죠.

 

바로 "꼰대"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한 이런 꼰대들은 어른의 자격이 없습니다. 깨끗한 거울 하나 갖지 못한 이런 분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초대될 수 없는 것이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어른이라는 훈장을 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둘째, 모순을 견디다

아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고 부릅니다.

 

성인들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가시면류관을 쓰고, 자신의 옮음을 실천하기 위해 세상의 온갖 오류와 편견과 모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사람들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고 부릅니다. 

 

개인의 삶은 파괴될지언정, 성인들은 본인의 옮음을 실천하기 위해 불타는 사막으로 묵묵하게 걸어갔고, 그렇게 그들은 역사책에 자신의 행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 없는 나머지 99.9%

우리들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가는 길이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 모순을 안고 살아갑니다.

 

"내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순은 개인의 삶에서 다양하게 발현됩니다.

 

내가 속한 직장이 부조리한 집단이라는 것을, 이 직장의 시스템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 됐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온갖 모욕을 견디고 출근하는 많은 직장인들,

 

내 남편이 죽어 마땅한 사람이고, 버러지보다 더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남편을 위해 밥을 차리고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아내,

 

자신의 꿈이 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흥미, 적성과는 전혀 관계 없는 곳에서 일을 하는 많은 분들,

 

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저는 처음 어른이란 뭘까에 대해 생각할 때, 등짐을 지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초로의 여인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내 가치관과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무언가(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발걸을을 떼는 사람,

수많은 모순과 오류를 온 몸으로 극복하는 사람이 바로 어른입니다.

 

내 안의 모순을 안고 버티는 것이 어른의 삶인 것입니다.

 

4. 자신을 극하는 힘 = 관성

이제 사주명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어른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재관(財官)을 쓴다"고 합니다.

 

재관을 쓴다는 것은 십신(十神) 중 재성과 관성의 기운을 쓰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재성은 내 힘으로 재물을 획득하고,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시장에서 마음껏 재능을 펼치는 것을 말합니다. 관성은 조직과 체계에 소속되어 나를 억제하며, 큰 규모의 거대 조직을 위해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성과 관성은 둘다 성인들의 기운이지만,

 

재성은 사회적인 다양한 활동(재물, 재능 활동)을 하는 것으로 청년의 삶의 방식에 어울리는 힘입니다. 반면 관성은 나를 극하고 조직의 가치에 순응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중장년의 삶의 방식에 어울리는 힘입니다.

 

위에서 말한 어른으로서의 삶은, 나를 괴롭히는 모순을 버텨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주명리적으로 보자면, 관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른의 고달픈 삶을,

사주명리에서는 (나를 극하는) 관성의 기운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계절에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목(木)이라고 보았을 때,(일간을 목으로 볼 때)

 

마치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변화를 거치며 흘러갑니다.

 

유아기는 나의 계절, 봄이라고 볼 수 있겠고, 십신으로는 비견으로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나 중심이고,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청소년기는 발산의 시기입니다. 내가 마음껏 내 잠재력을 쏟아내는 시기인 여름으로 볼 수 있겠고, 십신으로는 식상에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돌아다니고 표현하고 기쁘게 웃고 떠드는 시기입니다.

 

청년기는 내것을 취하는 시기입니다. 이성을 쟁취하고, 재물을 탐하고 내 영향력으로 남을 제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십신으로는 재성에 대입해 볼 수 있겠습니다. 오행 토처럼 엄청난 활동력을 자랑하는 시기입니다. 

 

중장년기는 오늘의 주제인 어른의 시기입니다. 나를 극하는 기운에 의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고 긴장하는 시기로 계절로는 가을입니다. 가을의 금기운을 숙살지기라고도 하는데, 엄혹하고 냉정한 기운은 나무로 하여금 열매를 강요합니다. 차가운 가을 기운에 의해 비로소 결실이 맺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십신으로는 관성입니다.

 

노년기는 휴식의 시기입니다. 오행 수에 참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을 관조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시기입니다. 계절로는 겨울이고, 십신으로는 인성에 해당합니다. 

 

5. 나가며(가을의 냉혹함에서 겨울의 휴식으로)

어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를 주제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사주명리의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을의 냉혹함을 견디는 일입니다. 나무는 늘 성장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하늘을 향해 뻗고자 하는 것, 옆으로 잎을 키우는 것이 나무의 생리입니다.

 

하지만, 가을의 냉엄한 기운은 그런 나무를 정면으로 거역합니다. 더이상 성장하지 말것을, 그 자리에 멈춰서서 열매맺을 것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오는 압박을 견디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제자리에 주저 앉는 일일지도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어렵고 힘들고, 고단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자연의 기운은 항상 이전과 다음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가을은 여름에서 이어져 왔고, 겨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단하게 열매맺는 일이 끝나면, 열매는 내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우리는 홀가분하게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가혹한 계절인 가을이 지나고 나서 오는 겨울은 우리를 편안한 휴식의 기운으로 감싸줍니다. 그리고 겨울의 지극하고 깊은 휴식은 열매를 다 떨어뜨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가을을 견뎌내지 못한 자는 열매를 떨어뜨릴 수 없고, 온전하게 겨울의 휴식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땅의 어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현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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