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을 헤매는 현묘(玄妙)- 독자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玄妙)입니다.

 

 

오늘은 제 별명인 현묘(玄妙)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현묘"라는 말은 국어사전, 중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데요. 

 

사전적 의미는

 

 

정도가 됩니다.

 

대개 현명하다 정도로 의미를 알고 계신데, 실제로는 "그윽하다, 오묘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현묘라는 별명을 스스로 짓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 잠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 하는 것이 오랜만이네요.

 

 

명리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저는 노자의 사상에 취해 있었습니다. 도덕경을 만난 이래로 계속 가방에 도덕경 책을 넣고 다니면서 꾸준히 읽었고, 심지어는 평생 도덕경 책만 읽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노자의 사상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저에게 동양(노장)사상의 학문적 길잡이가 되어 주신 선생님이 한분 계신데, 그분이 쓴 책은 모조리 사서 읽었고, 강연 자료를 하도 많이 들어서 한동안은 그분의 말투를 흉내내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원래 뭐 하나에 심취하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한동안 완전히 노자와 도덕경에 중독된 삶을 살았던 것이죠.

 

도덕경 1장은 도덕경의 전체 내용을 함축, 요약하는 굉장히 중요한 장인데,

 

그 1장에 바로 현묘가 등장합니다.

 

지금은 도덕경을 읽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1장 중에서 "현묘"와 관련된 몇개의 구절만 조금 옮겨보겠습니다.

 

...
...
1. 無名,天地之始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2. 有名,萬物之母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
...
3. 此兩者, 同出而異名(이 둘은 같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
4. 同謂之玄(이 둘이 같이 있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
...
<번호는 편의상 임의로 붙였음>

 

도덕경 1장의 내용 중 "현묘"와 관련한 부분입니다.

 

해석이 되어있지만 추가로 살을 붙여보면, 

 

1.2.

일반적으로 노자의 사상을 "무"로 보는데, (학교 교육의 폐해 중의 하나입니다. '노자=무위자연'으로 암기하기 때문에 전국민이 노자=무위도식을 떠올리지요.")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노자의 사상은 "유와 무"의 공존을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위에서도 "무"의 가치와 "유"의 가치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와 "무"는 모두 세상을 이루는 근본인데 각각이 가치가 있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무가 있었기에, 유가 있을 수 있었다. 무에서 유가 나왔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3. 

아주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짧지만 노자 사상의 모든 핵심이 녹아들어있죠.

 

"이 둘은 같지만 이름을 달리한다는 것", 노자는 "유"와 "무"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와 "무"는 서로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로 묶여있다. '새끼줄', 'DNA의 이중나선구조'처럼 서로 꼬여서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다는 노자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죠.

 

이 사상은 장자에게까지 이어지는데, 장자에는 "장자의 아내가 죽자 장자가 춤을 추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친구들이 장자를 꾸짖자 장자는 오히려 반문합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데, 슬퍼할 이유가 뭐 있는가?"

 

하면서 말이죠. "유"와 "무"를 "삶"과 "죽음"으로 대입하면, 

"유와 무가 사실은 하나다"라는 대전제는 "삶과 죽음은 사실은 하나다."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노자가 철학적 대전제(화두)를 제시하고, 장자는 그것을 변형 발전시켜서 이야기의 형태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드디어 현묘가 나오네요.

 

"이 둘이 같이 있는 것을 "현玄(현묘)"이라고 한다."

 

즉, 노자는 우주의 질서를 음과 양의 공존으로 보았고, 그것을 현(玄)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뒤에 묘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에 해석을 할 때는 玄을 "현묘"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玄은 사전적 의미로 검을 현玄입니다. 천자문에 나오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음과 양이 공존하는 현상을 玄이라고 했는데, 玄은 검은색 입니다.

 

즉 "검은색" = "어둠" = "무"를 상징하는 것이죠. 

 

"무"를 상징하는 단어를 가져다 놓고, "유"와 "무"가 공존하는 것을 표현한다?

 

뭔가 앞뒤가 안맞습니다. 결국 노자는 "무"를 중요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어의 미묘한 의미를 살펴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玄은 완전한 검정색, 어둠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玄의 의미는 어슴프레하고 어둑한 상태입니다. 노자는 玄이라는 단어를 통해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을 나타낸 것입니다.

 

어둠과 밝음의 중간,

경계가 없음,

흐릿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낀 산길과 같은 상황

 

에서만이 "무"와 "유"는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개가 자욱히 끼어 무와 유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현(玄,현묘)의 진짜 의미인 것입니다.

 

 

도덕경을 쭉 읽어보면,

 

이렇게 "무"와 "유"의 중간인 "현(玄,현묘)"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도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쪽에 치우친 그 순간 눈이 멀어버리고, 둘 사이의 애매한 공간에서 우주의 질서를 꿰뚫는 통찰이 새어나온다는 것이 노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경계의 아슬아슬함 위에 서있는 인간형이 바로 노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형인 것입니다.

 

 

 

명리학을 공부하고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별명? 필명? 호? 를 정할 때 제일 먼저 펼쳐든 것이 도덕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묘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도덕경은 철학적 담론이고, 그것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한 것이 역학입니다. 위에서 "유"와 "무"라는 단어만 "음"과 "양"으로 바꿔 보십시오. 도덕경의 이론은 완전히 역학 텍스트로 변합니다. 

 

도덕경에서 "유", "무"의 공존을 현묘로 표현했다면, 역학(음양학)에서는 "음"과 "양"의 공존을 태극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라면, 다른 하나는 직관적이고 시각적인 표현입니다. >>

 

 

그렇게 해서 현묘라는 이름이 저에게 왔고, 

저는 감히 "유무상생의 도"와 "음양의 이치"를 깨닫겠다는 무모한 포부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활동과 궁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꾸준히 글을 쓰고, 상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안개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비이며, 길을 가도가도 밝은 태양은 비추질 않습니다. 오히려 안개만 더 자욱해지고 의문만 맴도는 상황입니다. 제가 가는 방향이 해가 떠오를 동쪽인지, 해가 저무는 서쪽인지도 모른채 일단 가고 있습니다.

 

현묘가 현묘한 상태에 처해있는 것이죠. 

 

그래도 두렵거나 외롭지는 않습니다. 블로그 댓글과 방명록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상담을 받으신 분들도 질책하거나 실망하지 않으시고, 고맙다고, 힘을 얻었다고 오히려 저를 응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 어깨를 주물러 주시고, 손전등을 비춰주시고, 나침반을 쥐어주고, 신발을 닦아주시는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용기를 내어 안개 속을 헤맬 수 있었습니다. 

 

 

이제 블로그가 만 2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목표를 더욱 굳건히 잡고 더 단단하게 발을 디뎌보겠습니다. 현묘한 상태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저 멀리까지 손전등을 비춰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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