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바위 전설과 운명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오늘은 "며느리바위 전설과 운명"이라는 주제로 운명결정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며느리바위 전설

구전설화인 며느리바위 전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지역 천석꾼 부잣집에 한 탁발승이 찾아옵니다. 

탁발승이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자

그 지역의 소문난 악질 지주이자, 심성이 못된 부자는 그 탁발승의 자루에 똥을 담아줍니다.

 

"아주 맛난 것을 담았으니 많이 드시게~"

 

자루를 받아들고 돌아선 탁발승은 자루를 열어보고 깜짝 놀라고, 분노합니다.

 

'아주 못된 놈이 분명하구나.'

 

그때, 

 

헐레벌떡 그 집의 며느리가 탁발승의 뒤를 쫓아와 밥과 먹을거리를 내놓으며 시아버지 대신 사죄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장난이 지나치셔서 그런것이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탁발승은 며느리를 토닥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네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대신 사죄하는가, 오늘밤에 천둥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릴 것이니, 자네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를 들고 집을 빠져나와 저 앞산으로 오르게."

 

"네??"

 

"그리고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되네."

 

그 말을 남기고 탁발승은 홀연히 자취를 감춥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천둥 벼락과 함께 큰 비가 내립니다. 잠을 못 이루고 끙끙대던 며느리는 귀한 어린 아들을 들쳐메고 냅다 앞산을 향해 뛰기 시작합니다.

 

중간쯤 산을 올랐을까,

 

마을에서 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나 살려라 소리, 아비규환의 목소리가 며느리의 귀에까지 선명히 들려오는 듯 합니다.

 

며느리는 몇번을 꾹 참았지만,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게 되고,

 

아이를 업은 채 그대로 바위가 되고 맙니다.

 

산 위에는 아이를 업은 여자 형상의 바위가 남고,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린 마을의 부잣집터에는 연못이 생기게 됩니다. 

 

못된 부자 일가는 벌을 받고, 호기심을 참지 못한 며느리는 바위로 변한 것입니다. 

 

 

2. 의미분석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만 운명에 대한 궁금증은 남습니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탁발승은 신의 대리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못된 부자를 징벌하기 위한 현신인 것입니다. 

 

운명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탁발승은 부자의 못된 행동을 보고, 부자 일가를 벌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합니다.

 

바로 며느리의 등장입니다.

 

며느리는 이 부자 일가 중에서 유일하게 착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자기의 잘못도 아닌데, 부자를 대신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탁발승은 며느리와 며느리가 가장 아끼는 존재를 살려주기로 하고, 살 수 있는 방도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탁발승은 고약하게도 조건을 붙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쉬운 조건이지만, 우리가 그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절대 쉬울 수 만은 없는 조건입니다. 결국 며느리는 약속을 어기고 돌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왜 탁발승은 며느리에게 조건을 붙였을까요?

 

 

3. 조건을 붙인 이유 - 운명결정론

우리는 먼저 운명결정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많은 분들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부자가 똥을 건넨 순간, 부잣집 일가는 모두 죽을 운명에 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자가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악행을 쌓는 그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유일하게 자신의 죽을 운명을 거부하고, 탁발승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그때 탁발승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네가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나약한 인간이? 어차피 너희 일가는 죽을 운명에 처했어. 한번 벗어나려면 벗어나봐, 네 정성은 갸륵하다만 운명의 수레바퀴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아."

 

그리고 예측대로 며느리는 못된 부잣집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위로 변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운명이라는 것은, 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리학 최고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적천수 징의]를 쓴 '임철초'도 자신의 운명을 알았지만, 결국 한탄하는 것에 그치고 맙니다.

 

임철초는 맹자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莫非命也, 順受其正(막비명야, 순애기정)-무릇 명이 아닌 것이 없다.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이라고 한탄합니다.

 

명리학 100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임철초도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운명결정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부잣집 며느리가 방법을 알면서도 운명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 

 

명리학의 대가인 임철초가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한탄만 한 것,

 

 

여기에는 사회문화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부장제", "신분제"가 계층이동을 막고, 사회 변화의 싹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주어진 운명과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며느리가 혼자서 살아남았다고 한들, 어디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땡중과 내통하여 집안 말아먹은 악귀같은 년"으로 불리며 돌팔매질을 당했겠지요.

 

평생 글공부만 하던 임철초가 장사를 한다건, 유학을 간다거나, 유튜브를 한다거나 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오로지 과거급제가 신분 상승의 유일한 사다리이던 시대에서는 다른 수단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조상을 모셔야 한다는 제사의례에 대한 압박도 모든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인 "용"이는 역병의 창궐과 일제의 수탈 속에서도 오직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사명 때문에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맙니다.

 

 

4. 새로운 가능성

태어난 기운에 의해 삶의 조건이 형성되고 방향이 결정됩니다. 이것이 사주명리의 기본 철학입니다. 여기에 대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많은 역술가들이 직업적으로 상담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저 또한 사주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기운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면, 사주라는 것이 말 그대로 미신에 불가한 눈속임일 뿐이며, 많은 역술가들은 말 그대로 혹세무민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정말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사주의 틀 속에서 정녕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힌트는 위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탁발승은 며느리에게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입니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고 싶습니까? 그러면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여기에서 '뒤'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

내 삶의 틀,

익숙한 나의 환경,

나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내가 누리고 향유했던 모든 것

 

을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새롭게 운명을 개척할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명을 다른 방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바위가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집안", "자신의 과거"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임철초"와 "용"이도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명"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제 "수","목"의 기운이 절실한 지인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아침밥을 꼭 챙겨먹고, 11시 전에는 무조건 자라. 취미로 산행을 해야 한다. 집에 어항을 들여놓고, 베란다에 화분을 가꿔야 한다. 단 음식을 먹지 마라. 등등"

 

수십년간 자신만의 패턴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에게 과거와 단절하고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 때,

삶의 방식을 바꿨을 때,

 

 

운명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뀝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와 달리 21세기 대한민국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원한다면 과거와 결별하고 삶의 양식을 과감히 바꾸십시오.

 

하나의 기운은 반드시, 그 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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