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와 사주명리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오늘은 영화 트루먼 쇼와 사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영화 트루먼 쇼는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가 현대 사회의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고, 대사 하나하나, 배우들의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여러번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볼 때 마다 새로운 스토리적 장치나 숨겨진 의미 요소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탐구하는 자세로 보기에도 좋은 영화입니다. 

 

저는 적게 잡아도 스무 번 이상 보았는데, 영화나 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트루먼 쇼는 간단히 말하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희생양이 된 주인공 트루먼(짐캐리 분)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영화입니다. 

 

자신의 삶이 실시간 전세계로 송출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트루먼을 통해 영화 속의 시청자들과 영화 밖의 시청자인 우리 관객들은 그에게 동점심을 느끼게 됩니다. 

 

왜 우리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의 탈출을 응원할까요?

 

그가 갇혀 있기 때문이고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루먼의 인생이 불행한 이유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보의 비대칭성입니다. 

우리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고, 그의 은밀한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개인 사생활의 노출입니다. 

아내와의 잠자리를 제외하면 트루먼의 사생활은 전혀 없는 셈입니다. 노출하고 싶지 않은 아주 은밀한 영역까지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셋째, 진실성입니다.

트루먼의 가장 가까운 부모와 아내, 친구마저도 트루먼과의 관계 자체가 직업이자 일입니다. 트루먼은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지만, 그들은 트루먼 쇼라는 직장에 출근해 일로써 그를 대합니다. 트루먼과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연기이자 잘 치러내야 할 작업이 되는 셈입니다 

 

극중에서 바다에 빠져 사망했던 트루먼의 아버지는 몰래 잠입하여 트루먼을 찾아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는 트루먼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 직업을 얻기 위해 트루먼을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트루먼의 아버지라는 직업에 재취업하기 위해서 입니다.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트루먼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개인의 고유성과 주체성을 상실당했기 때문입니다. 

 

고유한 영역과 시간, 진실한 대인관계를 상실한 인간은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감옥에 갇히면, 내 시간과 내 장소 내 사람들을 잃게 되죠.

 

트루먼은 영화 세트장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현대인들은 더 정교하고 세밀하게 짜여진 사회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신들과 트루먼의 차이는 무엇인가?"

"당신은 갇혀있지 않는가?"

"트루먼을 에워싼 5000개의 카메라처럼 당신은 감시, 억압당하고 있지 않는가?"

"당신의 고유성, 주체성, 자발성은 유효한가?"

"당신은 당신의 알을 깨고 새롭고 낯선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당신의 지금(Now) 행동하고 있는가?" <실비아가 노트에 쓴 Now 와 트루먼이 차 안에서 아내에게 말한 'Let's go, Now!'는 같은 맥락하에 있습니다.>

 

2. 사주명리와의 만남

 

위의 질문들을 잘 살펴보면,

 

갇혀있다. 카메라, 감시, 억압

 

과 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단어들이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사주명리의 용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관성입니다. 

 

즉 트루먼은 관성의 틀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를 꿈꿀 때 마다 어김없이 트루먼을 잡아붙드는 관성의 힘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리해고에 대한 압박 <인원을 감축한다고 이야기하는 동료> - 직장이라는 이름의 관성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어머니> - (남자기준) 자식이라는 이름의 관성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현실 <피지로 떠나자고 하자 애(Teenager)처럼 굴지 말라고 하는 아내> -어른이라는 명예의 관성

 

사주에서 말하는 관성의 의미와 딱 맞아 떨어집니다.

 

또한 저는 "나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을 관성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트루먼을 둘러싼 5000개의 카메라는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관성(시선)의 다른 이름입니다. 

 

 

또한 생각을 더 확장해 보면,

트루먼은 5000개의 카메라에 노출된 것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전세계의 수천만의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관성의 장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트루먼은 개인적 매력과 인간성, 주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루먼은 어릴 때부터 제작진에 의해 기획된 삶을 요구받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작진의 뜻에 의해 교묘하게 조종당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체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뒤트린 조작된 일상은 은근한 압박으로 몸을 조여옵니다. 일반인이었다면 쉽게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사주적으로 보면, 관성이 극하는 것은 비겁이기에, 관성이 지속될수록, 자율성, 자발성, 고유성은 제한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성의 억압을 이겨냈습니다. 

 

트루먼의 방식, 일상에서 사용한 무기는 바로 유머와 여유, 웃음입니다. 

 

영화의 시작부분 트루먼이 가장 내밀한 공간인 욕실에서 혼자 상황극을 하는 것, 

이웃들과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내는 것에서

 

트루먼 특유의 위트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일상의 압박을 돌파하는 돌파구가 바로 이 여유와 웃음인 것입니다. 

 

결국 트루먼은 집요하고도 미묘한 압박을 여유와 웃음으로 돌파하였고, 급기야는 관성의 핵심에 다가가서, 자신을 30년간 억압해 왔던 그 목소리(시선)에게 자신만의 유머를 들려주고,

 

당당히 관성을 박살냅니다.

 

30년간 벼려왔던 무기를 가지고, 적의 심장을 도려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우리가 트루먼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트루먼의 무기인 유머와 여유, 웃음, 위트를 사주적으로 보면, 바로 식상에 해당합니다.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에서 행해지는 즐거운 활동,

하하호호 떠들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행위,

사소하고 하찮은 눈마주침에 키득거리는 것,

될대로 되라지 하는 낙천적인 태도,

비꼬기와 말장난으로 진중한 분위기를 깨는 행동,

 

이들이 모두 식상의 범주인데,

 

낯선 곳을 향한 탐구심,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도 빼놓을 수 없는 식상의 영역입니다.

 

즉 트루먼은 일상적으로는 웃음과 유머, 여유있는 태도를 유지해 관성의 압박으로부터 자신의 고유성을 지켰고,

 

낯선 곳을 향한 탐구심과 호기심, 도전정신으로 관성의 세계를 벗어났습니다.

 

즉, 트루먼은 식상으로써 관성을 극복해 낸 것입니다. 

 

트루먼 쇼라는 영화를 사주적으로 표현하면, "식상이 관성을 극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연출자의 근엄한 얼굴과 트루먼의 장난기 어린 얼굴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3. 나가며

영화의 초반부에 트루먼이 섬으로 출장을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여객선의 표를 판매하는 점원이 트루먼에게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One way, or return?" (편도입니까? 왕복입니까?)

 

트루먼은 이 질문이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하고,

 

"Return"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화는 큰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대화입니다. 

 

바다라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곳으로 떠나는 입구에서 

 

편도 티켓은 도전과 모험을 의미합니다. 돌아오는 것을 전제하고 않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정과 정착, 균형을 깨는 것을 의미하죠. 식상입니다.

 

반면 왕복 티켓은 안주와 현상유지를 의미합니다. 돌아오는 것을 전제하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고,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관성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트루먼은 Return 티켓을 끊었지만,

 

영화의 후반부(깨달은)에 트루먼은 One way 티켓을 끊고(실제로는 훔쳐서 배를 탑니다.) 결연히 바다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날 막을 생각이라면, 죽여라!" 라고 자신을 속박하는 세상을 향해 큰소리칩니다.

 

식상의 아주 강력한 힘으로 체제의 핵심을 공격한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무너진다는 핵심을 파악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발언입니다. 

 

결국 트루먼은 새롭고 낯선 삶으로 당당하게 떠나갔습니다.

식상 특유의 탐구심과 모험심, 개척 정신을 발휘해 관성을 극복해 냈습니다.

그리고 유머로 마지막에 한방 날렸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영화 속 보다 훨씬 더 약탈적이고, 잔인하고, 냉정한 이 세상,

빈틈없이 촘촘하게 우리를 억압하는 이 현실을 깨부수고 탈출하실 수 있으겠습니까?

 

one way 표를 끊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두려움 앞서신다면, 식상을 떠올리십시오.

 

식상을 쓰십시오.

 

가까운 사람들과 하는 대화에 집중하고,

거창하고 추상적인 것은 던져버리십시오.

의심하고 탐구하고 저항하십시오.

자신만의 목소리로 표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자유인이 되는 첫걸음, 

고유한 자신을 발견하는 지름길입니다.

 

당신의 식상을, 

당신만의 행복을,

당신의 one way 티켓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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