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상담과 시 읽기의 공통점
- 사주명리학/사주 상담
- 2020. 3. 3.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2020년 3월1일부터 사주 상담을 시작하였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꾸준히 개인사주 상담에 대한 문의가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사주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사주 상담을 미뤘던 것은 "이론 작업에 충실하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상담에 따른 정신적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기 버거워서 개인 사주 상담을 계속 미뤄왔습니다.
상담을 해보지 않으신 분들은 무슨 에너지 소모냐? 라고 반문하실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상담을 하기위해서는 내담자의 감정에 혼연일체되어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주 8글자만 가지고 하는 상담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상담을 하시는 분들마다 다르겠지만, 상담 하나를 진행하고 나면, 하루종일 내담자의 상처와 고통, 삶의 내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내담자의 삶을 복기하고, 추리하게 됩니다. 고통의 깊이가 어느정도였을지 가늠하게 되고,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할때도 멍하게 내담자의 사연에 집중하게 됩니다.
업계에서는 기가 쭉쭉 빨린다고 표현하는데,
저는 상담의 결과를 두고서도 "내가 100% 옳은 조언을 해주었을까?"하는 고민과 자책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긍정적으로 예견한 것이 오히려 내담자를 들뜨게 만들어 삶의 방향을 잃게 만들지 않았을까? 부정적으로 조언한 것이 내담자를 낙담시키고 큰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고 계속 복기합니다.
제가 엄청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늘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것이 건방진 "오버"라는 생각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개인 사주 상담은 저에게 항상 어려운 과제이고, 꼭 피하고 싶은 방학숙제 같은 존재입니다.
계륵같은 존재, 아프지만 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다 지속적인 요청에 힘입어, 저의 위로가 어떤 분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사주 상담을 개시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자살을 염두에 두었다가, 블로그의 글을 보고 자살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댓글을 보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담담하게 사연을 듣고, 거기에 걸맞는 위로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첫발을 떼었습니다.
1일 1상담만 진행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을 만나뵐 수는 없지만,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으로 당분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오늘은 사주상담을 진행하면서 느낀 생각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주제는 사주상담과 시 읽기의 공통점입니다.
사주명리 공부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사주상담과 시 읽기의 공통점
사주원국과 시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바로 짧다는 것입니다.
사주원국은 8개의 글자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도 역시 문학의 갈래 중 가장 짧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둘째,
짧지만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사주원국은 8개의 글자 조합이지만 정말 무수히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습니다. 역술가 10명이 모이면 100일을 토론하고 대화해도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하나의 사주원국입니다.
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짧은 시라고 하여도 그 몇개 안되는 단어 안에 온갖 의미와 상징들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한편의 시로 대화를 나누라고 하면, 비평가 10명이 100일, 1000일도 더 나눌 수 있습니다.
셋째,
해석에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주해석에도 공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주원국을 관통하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공식에 얽매이는 역술가는 그만큼 유연성을 상실한, 정답을 강요하는 경직된 상담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공식을 취하되 자신만의 시야를 갖추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 해석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듯이 시를 분석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합니다. 참고서에 나오는 핵심정리와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참고서의 분석방법을 외워서 시를 분석하는 사람은 시의 해석이 경직되고 교과서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딱딱하게 죽은 해석만을 기계처럼 해대기 때문에 시를 재미없게 만듭니다. 기본적인 분석방법을 취하되 자신만의 해석 철학을 갖추는 것이 올바른 시 해석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공부를 많이하면 해석할 수 있는 양이 늘어난다.
사주에 대한 공부를 많이하면, 하나의 사주 원국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한달을 공부한 사람은 토생금, 금생수 정도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5년이상 공부하신 분들은 훨씬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문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의 시를 두고 여러가지 견해를 제시할 수 있고, 시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의 시 분석과 평론가의 시 분석은 그 깊이와 양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2. 시사점
공통점 4가지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먼저 시든 사주원국이든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답을 선생이 가지고 있으면, 선생이 우쭐댈 수 있습니다. 정답을 선생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는 선생이 우쭐될 필요도 우쭐될 수도 없습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겸허하고 겸손한 자세로 시와 사주원국을 대해야 합니다.
위의 "넷째"에서 공부를 많이 하면, 해석의 양이 늘어난다고 했지, 핵심(정답)을 관통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핵심을 관통(정답)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것, 사주의 주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오랜 사주명리 고서들도 정답이 아니며, 대한민국 최고의 도사도 정답이 아닙니다. 하나의 사주명식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 그 사주명식의 주인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정답에 가장 근접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주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하는 말이 여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자신의 사주를 읽고 공부해서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주 공부의 가장 이상적인 방향입니다.
생전 처음보는 역술가에서 자신의 생년월일을 불러주고, 삶의 답을 내놔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자, 자기 삶에 대한 무시와 기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자기 자신보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자신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3. 나가며
사주원국과 시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고 글을 끝마치려 합니다.
사주원국과 시의 차이점은
시는 (문학적으로)좋은시와 나쁜시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주원국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행은 5개이고 칸은 8칸입니다. 어떻게 조합하여도 절대로 오행이 균형잡힌 사주원국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좋은 사주란 존재하지 않고,
세상에 모든 사주원국은 불완전하고 나쁩니다.
여기에 사주명리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고 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평등하게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우리들은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그 불완전함을 사랑하고, 그 불완전함에서 장점과 매력을 발견해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불완전함이라는 것은 완벽한 신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신은 완벽하기 때문에 저 우주에 외롭게 홀로 서있지만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른 존재의 도움을 원하고 갈망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함께 조화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주, 완벽함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길,
오히려 자신의 단점에서, 어둠과 아픔에서 아름다운 꽃이 자란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