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봐) 먼저 제 소개를 드리고, 근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18년 네이버에 안녕 사주명리 블로그를 시작으로, 2019년부터는 티스토리에서 꾸준히 명리 컨텐츠를 연재해 오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나의 사주명리" 라는 책을 출간하였구요.
2023년에는 "나의 사주명리"(심화편)을 출간했습니다.
작년인 2024년에는 강의 내용을 정리한 "현묘의 사주강의"라는 책도 나왔죠.
2023년부터는 "현묘의 사주강의"라는 이름으로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제자분들과 함께 상담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간
매년 책을 출간하고, 강의 준비를 하느라 블로그에 소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몇년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를 이뤄내는 과정이 즐겁고 의미가 있었지만,
제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블로그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타향에서 바쁘게 지내는 사람이 가지는 쓸쓸함,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뿌리이자, 정체성, 고향인 "안녕, 사주명리"에 글을 쓰지 않으니
초조함, 불안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몸집을 키워갔던 것입니다.
그간 블로그에 게시글을 쓰면서 많은 분들과 소통했고, 그 과정에서 삶의 행복을 느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행복을 되찾고자 합니다.
여전히 할일이 많고, 가야할 길이 멀지만,
제 행복을 위해,
그리고 제 목소리와 글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그리워하는 구독자 여러분을 위해
앞으로
정기 컨텐츠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정기 컨텐츠의 주제와 방식은 바로
"사주명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입니다.
먼저 제가 강의를 진행하면서 받았던 질문과 제 견해를 정리해서 꾸준히 게시할 계획이구요.
게시글에 사주명리에 대한 질문을 달아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기 컨텐츠이니만큼,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제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스타나 유튜브에 간헐적으로 게시했던 글들도 천천히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개설하게 되어 정말 기쁘고, 기대됩니다.
좋은 질문 많이 남겨주시면,
부족하지만 제 견해를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전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봄이 곁을 내어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계절인데요.
따뜻한 봄을 부르는 첫번째 글 시작해 볼까요?
현묘의 "좋은 질문입니다." (1) 음이 먼저인가요? 양이 먼저인가요?
질문) 음양오행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왜 양음이라고 하지 않고, 음양이라고 하죠? 음이 먼저이기 때문인가요?
현묘)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질문의 의도에 따라 두 갈래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차원, 혹은 더 나아가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의 접근입니다.
음과 양은 선후를 가릴 수 없습니다.
명리에서 음양의 개념은 계절로써 관찰됩니다. 일년은 봄여름의 양과 가을겨울의 음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하루도 낮과 밤으로 나눌 수 있죠.
하지만 음과 양이 분리될 수 있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명리에서 말하는 음양은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와 같습니다. 혹은 동전의 앞뒤와 같죠.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를 반드시 담보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시야에서 보면, 모든 천체는 다른 천체 주변을 회전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천체는 다른 천체와 관계 맺음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죠.
한 예로 태양이 양이라면, 지구는 음인데,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과 태양의 관계를 보면, 또 음양이 뒤바뀝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같죠.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지만,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것처럼 주가 되고 부가되는 관계, 종이 되고 속이 되는 관계는 중첩되어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음양은 한몸이자 뒤엉켜 있고, 중첩되어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比兩者, 同出而異名"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무슨 말이냐면, 음과 양(유와 무)은 한 몸인데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은 음과 양(유와 무)의 관계는 새끼줄처럼 꼬아진 관계라고 표현합니다.
매우 탁월하고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우리가 새끼줄을 보고, 꼬아진 줄중에 어떤 줄이 먼저냐고 묻지 않잖아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음과 양의 관계입니다.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따로 뗄레야 뗄수가 없는 관계, 선후를 물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음양의 관계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물리학의 거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닐스 보어 이야기를 안할 수 없죠.
러더퍼드는 반감기라는 용어를 만든 분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자모형의 초기버전 제안했습니다.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는 원자는 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원자 크기의 10만분의 1정도 크기에 해당하는 핵이 전체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론이죠.
닐스 보어는 더 깊이 들어가 전자는 특정한 궤도상에서만 안정적으로 핵 주변을 돈다고 주장합니다.
이 연구들의 의미가 뭘까요?
우주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의 상보관계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자핵과 전자와의 관계를 양과 음으로 치환하면, 정확하게 동양철학의 근간이 되는 음양의 이론과 맥이 닿습니다.
중요한 것을 원자핵과 전자와의 관계에서 선후를 따질 수 있냐는 것입니다.
원자핵이 먼저냐? 전자가 먼저냐?는 질문이 의미가 없죠.
왜냐하면 원자핵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 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음과 양의 결합이기에 선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본질과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바탕에둔 접근입니다.
도덕경이나 물리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첫번째 접근은 별로 재미가 없죠.
어찌보면 당연한 말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음과 같은 선문답처럼 들립니다.
세상은 하나다, 그러니 선후가 없다. 끝!
하지만 두 번째 접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재밌어요. 매우 실용적이기도 하구요.
근원적인 차원에서는 음양의 선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구분하는 것이 의미도 없구요.
하지만 명리는 철학이면서 동시에 실용처세론입니다.
철학과 실용 두마리 토끼를 모두 갖춘 이론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론이 바로 사주명리입니다.
철학자가 굶지 않을 수 있어요. 이 얼마나 혁명적인 문장입니까?
명리는 음양오행에 바탕을 두 철학체계인데 어떻게 실용처세론이라는 무기를 장착할 수 있었냐?
바로 시간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명리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간은 선후의 개념이죠. 전과 후, 즉 먼저와 나중으로 나눌 수 있어요. 현재와 미래로 구분할 수 있죠.
이 관념에 계절을 대입하면, 지금이 겨울이면 다음이 봄입니다. 봄 다음에는 여름이 와요.
시간의 선후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바로 명리의 대전제이자 우리가 몇 날 며칠 곱씹어보고 결국은 환호하게 될 놀라운 통찰입니다.
이미 와있는 시간이 있고, 다음에 도래할 시간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시간은 의미가 있고, 명리에서 그 의미는 음양오행의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이 먼저인지 양이 먼저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절을 예시로 들어 음인 겨울이 먼저냐, 양인 여름이 먼저냐를 확인한다면,
음이 먼저인지 양이 먼저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무한순환 논리에 빠져듭니다. 계절은 순환하기 때문이죠.
<무한순환논리>
0에서 1이 시작하는 거지 그러니까 겨울이 먼저야, 그러니 음이 먼저다. 하하하!
모든 사물이 죽어야 다시 태어나는 것 아니겠니? 하하하!
(근엄하게) 무에서 유가 태어난다.
그런데 죽기 위해서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살아있지 않은 사물이 어떻게 죽을 수 있지?
0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고? 바로 1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1에서 0이 되는 거야!
(유쾌하게) 그러니 양이 먼저다 이사람아. 먹어야 똥을 싸지! 하하하!
(그래서 다시 현묘의 결론)
우주 빅뱅의 이전에 엄청 격렬한 에너지가 발견되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도 안봤니?
지구가 순환하는 것처럼 우주도 빅뱅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순환한다구!
계절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상상으로 답을 내놓고 맞다고 우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죠.
그래서 다른 예시를 들어야 합니다.
사주명리에서 하나의 계절은 3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선후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죠.
봄을 예로 들면,
먼저 인목(寅)이 봄을 알리고,
다음에 묘목(卯)이 봄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진토(辰)가 와서 봄을 마무리하죠.
인목이 1, 묘목이 2, 진토가 3입니다. 순서대로요.
명리에서 봄은 그렇게 찾아오고 시간의 의미는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음양의 선후를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죠. 지지의 음양을 관찰해보면 되니까요.
인목의 음양은 양,
묘목의 음양은 음,
진토의 음양은 양입니다.
그렇다면 음과 양의 선후는 바로 정해졌네요.
바로 양이 먼저입니다.
양이 먼저 와서 봄을 만들고, 음이 봄을 완성합니다.
세상을 깨우고 흔드는 것이 양의 역할이고,
세상을 구성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음의 역할입니다.
명리가 규정하는 세상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철학은 보편적 진리라는 잣대로 세상을 탐구하기 때문에 선후와 선악, 레벨과 위상차이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넓은 시야에서 보면 3만년전의 인간이나 2025년의 인류나 그냥 하나의 인류로써 정의될 뿐이죠.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하지만 현실, 즉 시간은 선후와 치우침, 레벨, 위상차이가 확실히 존재합니다. 좁은 시야에서 보면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은 확연하게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음이 먼저냐 양이 먼저냐 하는 짧은 질문에도 두가지 접근방법으로 답변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주명리의 장점,
철학임과 동시에 인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도구, 세상에 없는 유일하고도 최고의 도구라는 점 어필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좋은 봄날 보내세요!
총총.
2025년 3월
현묘
추신) 선과 후의 개념에 도덕과 호오를 접목시키면 안됩니다. 선이 좋고, 후가 나쁜건가요? 시간의 선후에 좋고 나쁨을 적용할 수 있습니까? 선과 후에 따른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음은 지극하고 좋은 것이고, 선이 좋은 것인데, 음이 선이 아니라서 불쾌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답변을 바라는 질문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성심껏 아는만큼 (모르면 공부해서) 답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