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식상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명리학)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십신에 대한 이야기를 드려보겠습니다.

식상에 대한 제 생각 함께 가보시죠.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고속 성장,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세계 꼴지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가
50년만에 압도적인 경제력을 갖춘 국가로 도약했으니

정말 "기적"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초고속 성장은 부작용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빈부 격차나 환경 파괴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바로 세계 꼴지 수준의 출산율입니다.


출산, 즉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개별 주체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만,
거시적인 국가 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피터 자이한(Peter Zeihan)과 같은 지정학 전략가이자 인구통계 전문가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를 바로 출산율의 저하로 보았습니다.

베이미부머 세대가 은퇴하고 나면, 생산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줄어든 생산인구가 많은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기에, 정부입장에서는 화폐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년층에게 배분해야 할 연금의 부담을 줄이려 할 것입니다.

예를들어 노년층의 연금이 월 300만원이라고 할지라도, 초고인플레이션이 되면 이들에게 가야할 300만원의 가치는 점차 낮아질 것이기에, 노년층의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생산인구는 숨통이 트이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을 따라서 월급은 인상될 수 있지만, 연금은 절대 오를 수 없다는 이중성이 노년층을 우울하게 만들고, 생산인구에게는 조금의 활력을 주는 것입니다. 즉 직장에 다니는 사람만이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찍어내는 만큼 돈을 소비해야 경제에 활력이 도는 것인데, 주머니가 가벼워진,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노년층은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려 할 것이기에 기업의 경제 활동이 현저히 위축됩니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지 않으니, 기업 입장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즉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실업율이 높아지는 최악의 경제 위기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제위기는 정말 단순하게도 생산인구의 부족, 즉 애를 낳지 않아서 비롯된 것이므로,
인구 불균형이 심하고, 출산율이 매우 낮은 나라에서는 이런 위기가 극단적이고, 즉각적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미래가 절대 장밋빛이 아니라는 말이며,
위기는 아주 급작스럽게 도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며,
미래에 받을 연금을 계산하며 흐뭇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연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몇년 안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민족은 이런 암울한 전망을 극적으로 타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갑목의 힘이 강한 나라라고 하는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갑목 특유의 집중력과 투쟁심,
빛나는 창의성으로 극단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산율이 암울한 미래를 불러온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주를 공부하는 우리가 염두해 둬야 할 것은,

이른바 선진국,
특히 초고속 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출산율의 저하가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출산율의 저하를 십신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과거 봉건사회에서 강조된 십신은 관성과 인성이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십신은 식상과 재성입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이른바 관인의 시대에서, 식재의 시대로의 대 변환이 이뤄진 것입니다.

개별 주체의 자유와 개성의 표출을 의미하는 식상,
재물에 대한 추구와 경제활동을 의미하는 재성은,

현대에서는 가장 잘 써야할 기운이며,
중요시되는 십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출산율과 어떻게 연결 될 수 있을까요?

여성의 사주에서 식상을 자녀로 보는 과거의 관점,
식상 자체를 자녀의 자리로 보고, 식상의 상황을 자녀의 처지(직업 등)와 연결짓는 관점으로는
식상의 시대와 출산율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성의 사주에서 식상이 자녀라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독려되고, 여성의 식상활동이 장려되는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여성이 자녀를 많이 낳아야 합니다.

자녀가 식상이고,
현재는 식상의 시대인데,
왜 유독 대학민국에서는 출산율이 세계 꼴지수준일까요?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제 3세계에서는 아직도 출산율이 높은데,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보장하는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식상은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힘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열망은 식상이 아니라
바로,
인성이 좌우합니다.

인성은
어머니에게서 사랑받는 힘이자,
바로 사랑을 베푸는 힘입니다.

나를 버리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힘,
다른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지우고 아낌없이 주는 힘

이 바로 인성입니다.

인성은 말 그대로 출산과 보육의 기운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유초등학생을 기르는 힘>
반면, 식상은 교육의 힘입니다.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힘>

아이를 낳고 기르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인성이 것이 명백한데,
우리는 여성의 몸에서 자녀가 태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그동안 식상 = 자녀라는 공식으로 사주를 판단한 것입니다.

그간 여성을 물리적인 출산 기계로 본 단순한 해석을 해온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서 기르고자 하는 마음,
나를 희생해서 자녀에게 쏟아붓고자 하는 숭고한 마음을 인성으로 보면,

선진국의 출산율 저하가 너무 쉽게 이해됩니다.

특히 자본주의 즉, 재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재성은 인성을 극합니다.

즉 돈을 추구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경제활동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
자녀를 낳으려는 마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재성의 환경에서는
누구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심지어 내 자녀라고 하더라도)
시간을 쓰는 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모든 것을 투자와 산출의 방정식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즉 재성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쏟아붓어야 하는
인성의 행위가 너무 비효율적이고 가소로워 보입니다.

커리어를 위해 달려나가야 하는데,
커리어를 단절하고,
자녀에게 희생 봉사하는 것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식상과 재성이 추구되는 환경에서는
인성이 도저히 자리잡을 수 없고,

인성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되면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환경에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자녀는 식상이 아니라,
인성이라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자본주의와 출산율이라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행의 상생상극이라는 원리를 거머쥐고 있는 사주명리의 힘이자,
매력입니다.


너는
식상이 두 개이니 자녀를 두 명 낳을 것이다.
식상이 극을 당하고 있으니 자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이다.
식상이 재성을 생하고 있으니 자녀가 돈을 벌어서 너의 노후를 책임질 것이다.


그간의 해석이 얼마나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해석이며,
본질을 벗어난 해석인지

확인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그토록 천대시되는 인성은 시간이 지나서 꽃을 피웁니다.

재성은 일간에게는 멀고도 험한 기운이기에,
일간을 지치게 하고, 소모하게 하고,
결국은 파괴합니다.

인간은 재성으로 향할때, 에너지가 샘솟지만,
결국 그 에너지로 인해,
인간은 붕괴됩니다.

산 위에 산을 쌓다가 견디지 못한 자본주의가
한꺼번에 무너지듯이 말이죠.

이럴때 인성이 빛을 발합니다.

인간은 희생하고 봉사하고, 한 존재에게 완전히 헌신, 몰입했을 때,
드디어 통찰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폐허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사랑하는 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는
이치는

인성이 주는 고귀한 교훈입니다.

돈을 좇는 자는 스스로 그 돈의 무게에 깔리고,
사랑을 베푸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랑으로 평정심과 여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극단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인성을 외쳐봅니다.

"오로지 인성만이 일간을 생한다."
"일간과 인성은 서로 상생하며, 스스로를 그리고 모두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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