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과의 대화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내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네. 자네를 만나면 뭔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네."

"반갑습니다. 독자들에게 벤야민 씨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저작과 사상의 스펙트럼이 넓으셔서.."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생각쟁이 정도로 해두면 좋겠네."

"정확한 표현이십니다."

"뭐가?"


"무신일에 태어나셨습니다. 무신의 무(戊)는 선생님의 본질적 지향을 의미합니다. 안주하지 않고, 정착하지 않으며 끝없이 옆으로 퍼져나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성향은 무(戊)가 발휘하는 힘입니다."

"듣던대로 맹랑하구만. 생일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삶을 규정하려 들다니.. 일단은 더 들어보지. 그럼 그 아래에 있는 하얀색 격자무니는 뭔가? 그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물론 의미가 있지요. 그 아래 하얀색은 신(申)이라고 하는 기운인데, 탐구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특히 정해져 있는 것, 강압적인 것, 폭력적인 것, 틀을 거부하는 힘입니다. 특히 부당한 권위를 박살내는 힘을 의미합니다."

"내 삶에 대해 알고 하는 이야긴가? 묘하게 들어맞는군. 그때는 파시즘과 반파시즘 사이의 사상 투쟁이 맹렬하던 시기였지. 나는 물론 반파시즘의 진영에 서 있었지만, 맹목적인 반파시즘 운동에 대해서도 경계를 했었지.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를 못했어."

"경계와 틀, 정해진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무신의 힘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 07. 15.~1940. 9. 27.)은 독일의 훌륭한 비평가이자 사상가였지만, 생애 내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했다. 그는 교수 자격 취득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시게 되는데, 당대를 풍미한 사상가 아도르노가 그의 논문을 심사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무신일주의 그의 사주에는 관성의 힘이 없는데, 이로 인해 일지의 申(신금)을 견제할 힘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정착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훌륭한 생각쟁이들은 관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평생 심장병으로 고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심장이 없는 지금이 훨씬 편하네. 내 심장병에 대해서도 할말이 있는가?"

"할말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 사주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쳇, 어떻게든 말을 지어낼 줄 아는군. 도대체 그 핵심이라는 게 뭔가?"

"이렇게 폭주기관차처럼 전 세계를 누비는 사주의 경우, 얼마 달리지 못하고 멈추고 맙니다. 관심과 탐구의 영역이 워낙 넓기 때문에 동쪽으로 조금 달리고, 다시 남쪽으로 조금 달리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갈팡질팡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다가 하나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담을 하는군."

"그래서 선생님과 같은 사주의 경우, 반드시 강한 엔진이 필요합니다."

"엔진이 강하면 더 멀리갈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이런 구조의 사주를 관찰할때는 반드시 엔진이 있냐 없냐를 살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선생님의 사주는 아주 강하고 아름다운 엔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유력한 자리에 말입니다."

"혹시 저 빨간색 글씨 말인가? 붉게 빛나고 있는?"


"통찰력이 대답하십니다. 저 기운을 정(丁)이라고 부르며, 어머니의 힘이자, 생각의 힘, 통찰의 힘, 공부의 힘을 의미합니다. 저 기운이 사주의 주인공인 무(戊)를 바로 옆에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무(戊)는 전세계를 지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저 기운의 아름다운 작용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훌륭한 성취를 남길 수 있으셨다고 봅니다."

"오호, 그래? 그런데 그게 심장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저 아름다운 기운은 신체적으로는 심혈관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기운이라며?! 그렇다면 심장이 튼튼해야 옳지 않나?"

"사주 자체적으로 보면, 맞는 말씀인데,"

"또 뭐 다른게 있단 말인가?"

"대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흥! 사주가 기차라면, 대운은 철길 같은 것이겠군. 기차가 달리는 선로 말이야."

 

발터 벤야민이라는 기차가 달려야 하는 기찻길


"어찌 그리 명쾌하십니까? 맞습니다. 대운을 보시면 30대 이후로는 아름다운 정(丁)의 기운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신해, 임자라는 기운이 있는데, 그 기운이 정(丁)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것입니다."

"대운이라는 환경적 여건에 의해 엔진이 멈췄다?!"

"그렇습니다. 황금과 같은 기운이 제한을 당하게 되니 길흉적으로도 좋지 않을 뿐더러, 심장병 또한 정신적으로도 심한 우울증을 경험하셨다고 봅니다."

"후대의 연구자들이 나를 우울한 지식인이라고 포장하더군. 그렇지, 우울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숱한 좌절과 삶의 굴곡 속에서도 나는 수많은 책들, 도처에 널린 지식, 앎 그 자체로 행복을 느꼈었네. 그리고 식도락에 대한 것도 빼놓을 수 없지."

 

"네 특히 음식과 요리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남기셨었죠?" 

 

"맞아, 맛있는 요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내 삶을 이끌어간 소중한 원동력이었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뭔가?"

 

"선생님과 비슷한 사주를 가진 분들을 알고 있는데, 모두 음식에 남다른 열정이 있는 분들입니다. 한번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당을 옮겨가며 점심을 두끼나 먹었다니까요. 한정식을 먹고, 20분 후에 근처의 식당에서 따로국밥을 먹었죠."

 

"신기하군,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식도락이라고 할 수 있지. 대체 어떤 자들인가?"

 

"김어준과 강헌이라는 분입니다. 탐구정신으로 똘똘 뭉쳐있고, 가식과 허위를 온 몸으로 거부하는 분들이죠."

 

일간의 주변에 위치한 식신의 힘은 식도락을 의미한다. 특히 무신의 경우, 戊(무토)라는 강하게 뻗쳐나가는 힘에 기반하고 있으니, 식도락의 힘이 강렬하고 끊없이 솟구친다고 볼 수 있다. 발테 벤야민은 음식과 요리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데, "산딸기 오믈렛"에 관한 에세이는 주목할만하다. 서구판 은어와 도루묵 이야기인 산딸기 오믈렛을 통해 벤야민의 핵심 개념인 아우라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음식의 맛은 음식 그 자체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의 주변 환경이 좌우한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맥락과 환경(분위기)이고, 주변의 상황과의 조화를 통해 고유한 '아우라(aura)'가 뿜어져 나온다. 

 

"지금 몇시인가?"

 

"벌써 가시게요?"

 

"아직도 할 일이 많아.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아서 정리하려는 내 작업은 여기서도 계속되고 있다네. 살아서는 잡다한 지식을 모아놓은 것에 불가하다는 머저리들의 평가도 들었지만, 그들은 내 스케일을 모르고 하는 말이야. 지식과 앎의 평원에서 누리는 자유는 이루 말할 수 없네. 이 자유를 꼭 성취로 이뤄내야 하네. 여기서는 정말 만나야 할 사람이 많고, 얼마든지 누구든지 만날 수 있지. 그들과 대화하며 지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려면 늘 바쁘단 말일세."

 

"대단하십니다."

 

"남은 이야기는 자네가 여기로 넘어오게 되면 그때 마저 하자구. 기다리겠네."

 

"아니 기다리실 필요 없습니다. 아직 저도 여기서 할일이 많아요. 그런데 실마리는 좀 얻으셨나요?"

 

"실마리, 얻었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보니까 부침이 따라오게 되었던 것 같네. 내 삶을 살아내려다 보니까 따라온 부침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 달리지 않았으면, 발이 아프지 않았겠지. 그런데 어쩌나 나는 달리려고 태어난 사람일걸. 그리고 자네"

 

"네?"

 

"부침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쫄지마. 좌절이나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면, 스스로의 삶을 살아낼 수 없게 된다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최악의 환경에서만 비로소 죽어서도 잊지 못할 최고의 산딸기 오믈렛을 맛볼 수 있는 거라네. 여기서는 고통이 없으니 음식이 하나도 맛이 없다네. 여기서의 음식맛은 그저 복제된 것에 불가하다네. 요새 자네들이 말하는 디지털인가 하는 것처럼 말이야."

 

"좋은 말씀이지만 늘 두려워요. 낙오가 될까 봐,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봐."

 

"나약하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지 못했을 때, 중간에 포기했을 때, 그때가 제일 슬픈거야. 좋아한다면 끝까지 밀어붙여. 밀어붙이는 그 과정에서 뭐가 만들어지는지 아나?"

 

"아우라죠?"

 

"그렇지! 자네만의 아우라를 꼭 만들어 내게나. 어이쿠 늦었군. 담에 꼭 보세! 이만 가야겠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여쭤볼게요. 혹시 쳇 베이커씨 만나보셨나요? 그쪽에 계시잖아요. 만나시면 저한테 들르시라고 말 좀 전해주세요."

 

"쳇! 그 약쟁이? 헤로인이나 대마가 있다고 소문나면 자네를 알아서 찾아갈걸세. 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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