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오행 (3부-개와 고양이가 절실한 사람들의 사주)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먼저 가까운 것과 먼 것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십신 이야기입니다.

 

일간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가까운 십신이 있고, 먼 십신이 있습니다.

 

오행이 총 다섯 개이고, 일간이라는 기준 하나를 잡으면 네 개가 남습니다. 

 

식상, 재성, 관성, 인성이 그것입니다.

 

식상은 일간이 생하는 십신이니 일간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가깝습니다.

 

인성은 일간을 생하는 십신이니 역시 일간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가깝습니다.

 

반면, 재성과 관성의 경우, 일간에 닿기 위해서는 다른 오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성 → 인성일간식상 → 재성

(멈)     (가까움)          (가까움)   (멈)

 

 

저는 사주를 볼 때 이렇게 일간과 가까이 있는 오행을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왜냐하면, 인성과 식상은 일간에게 닿는 기운이자, 일간에게서 출발하는 기운이기 때문입니다. 

 

일간과 가장 가깝고,

밀접하며 익숙하고, 

뿌리가 되는 기운(인성)이자, 뻗어나가는 기운(식상)이기 때문에 인성과 식상에는 인생의 많은 실마리가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길흉화복(용신)을 추론할 때도 저는 인성과 식상에 중점을 두고 해석을 전개합니다. 

 

출발 없이는 끝이 없기 때문이며,

뿌리없는 나무는 똑바로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기운이 없지만,

인성과 식상은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기운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오행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난데없이 인성과 식상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행위가 인성과 식상 중 하나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식상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식상은 일간이 생하는 오행입니다. 

 

목生화라는 순환의 고리가 있을 때, 일간이 목이라면, 식상은 화에 해당합니다. 

 

일간이 식상을 배출(生)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식상은 자녀의 출산, 양육의 의미를 지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의 사주에서 식상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으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다, 자녀복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生하는 것이 낳고 살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무언가를 기르는 행위가 식상이 되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위는 식상의 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일차원적인 해석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더 확장해 보겠습니다. 

 

식상은 재성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재성은 취해서 가지는 것이고, 내것으로 만들려는 강한 욕망을 의미합니다. 재성에 초점을 맞춰보면, 식상은 재성을 위한 도구에 해당합니다. 

 

재물을 취하기 위한 도구로써 식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는 따라서 식상을 활동성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활동성을 바탕으로 재물을 취하고 보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상을 재물을 취하기 위한 활동성, 혹은 재물을 취하기 위한 도구로 이해한다면,

식상을 "기르는 행위"라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단서가 달려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기르는 행위가 식상의 진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익(재성)을 주지 않는 식상은 식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식상은 반드시 재성으로 흘러야 하고, 이익을 가져다 주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식상을 개인의 이기심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시 반려동물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생계를 위해 소를 키우거나,

닭을 키우면서 달걀을 판매하는 분들은 식상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키우는 것이 나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반려동물 분양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식상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잘 키워서 분양이 잘되면 나의 이익이 증대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 경제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습니다. 

 

개나 고양이가 임신을 하면, 

"오예! 돈 벌었다. 마리당 얼마냐?!" 하고 환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 흘리고, 불러가는 배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마찬가지 자신의 아이를 노후 생계 수단으로 보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가 벌어올 돈으로 내가 편히 살기 위해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의 육아와 식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주에 식상이 많아서 애를 잘 낳고, 많이 낳고 이런 말은 다 걸러들어도 좋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식상이 아니라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행위는 인성일까요?

 

반려동물은 내가 키우는 것이고, 인성은 나를 키우는 힘입니다. 뭔가 앞뒤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태극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

먼저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0대 후반 사회초년생 여성이 있습니다. 

 

서울에 상경하여 외롭고 고단하게 살고 있습니다. 

 

원룸에 살며 고양이 한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출근하기가 싫어서 밤새 울다가 겨우 출근하였는데,

 

어김없이 모멸감을 한꾸러미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혼자 집사를 기다리던 고양이는 집사의 발소리가 나자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지독한 외로움에 하루종일 떨다가 집사를 보자 그녀의 얼굴에 온몸을 부벼댑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꺼이꺼이 울고불면서 고양이를 안고 뒹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언니)가 미안해. 엄마(언니)가 미안해. 늦게 와서 미안해. 혼자 둬서 미안해."

 

 

그렇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그녀는 식상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고양이의 언니이자 엄마로써, 즉 고양이의 보호자로써 고양이를 보살피고 아껴주는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설 수 없는 대상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힘, 그 힘의 정체는 바로 인성입니다. 

 

나를 생하는 힘만이 인성인 줄 알았는데, 실상 인성은 베푸는 힘이자, 조건없이 사랑하는 힘입니다. 나를 희생하고, 버리고 던져서 타인을 보호하는 힘이 인성입니다. 

 

인성은 주는 힘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아낌없이 전부 주는 행위, 그것이 인성의 본질입니다. 

 

여러분이 반려동물의 보호자로써 아낌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준다면, 여러분은 인성을 활용하고 쓰고 계신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인성이 받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에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의 그녀는 직장에서는 냉정한 잣대로 업무에 대한 평가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경쟁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 어떨까요? 그녀의 고양이는 아무런 조건없이 그녀에게 기대고 애정을 표현합니다. 심지어 그녀가 바깥에서 사람을 죽이고 왔더라도 그녀의 손을 핥아주고 위로해 줍니다. 조건 없이 일방적인 애정을 줍니다. 

 

그녀는 마치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것처럼, 고양이에게서 무조건적인 이해와 존중을 받습니다. 고양이 앞에 서면 그녀가 그녀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가치있는 존재가 됩니다. 

 

고양이와의 관계로 인해 그녀는 채워집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태극처럼,

하나의 기운은 서로 위치를 뒤바꾸면서 작용과 반작용을 동시에 합니다.

 

인성은

곧 무조건적으로 나를 채우는 힘이자, 내가 남에게 베푸는 힘입니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는 힘이자, 어머니의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힘입니다. 

개를 보호하고 아끼는 힘이자, 개에게서 위로와 사랑을 받는 힘입니다. 

남에게서 이해받는 힘이자, 남을 이해하는 힘입니다.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으십니까?

지금 키우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녀처럼 외롭고 힘든 삶을 살고 계실 것입니다. 

 

위로와 평안과 휴식, 

그리고 무조건적인 존중과 사랑이 필요하다면, 그러하다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베풀고 아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내가 그 마음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반려 동물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만큼,

내가 그로부터 큰 위로와 사랑,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준만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명리학에는 실은 生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오로지 상생(相生)이라는 단어가 生의 작용을 간신히 포착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일방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자만이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극한 성심을 다해 온전히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주고 받는 통로가 되는 자신의 인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

반려동물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바로 여러분의 인성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사랑의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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