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주 상담 2

 

전편과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을 안 보신 분들은 먼저 전편을 보고 오시면 좋습니다.

 

2020/09/02 - [사주명리학/사주 상담] - 최고의 사주 상담

 

최고의 사주 상담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오늘은 최고의 사주 상담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드려보겠습니다. 일전에 한번 선보였는데, 편하게 글을 쓰기에 좋은 형식인 것 같아 오늘도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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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멀었지만, 선생은 걷는 것을 고집했다.

 

한참을 걸어가자 눈앞이 확 트이면서 섬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과 묘는 삶의 회한을 담고 있는 듯한 섬진강의 진하디 진한 청록색의 물줄기에 잠시 넋을 놓았다.

 

산 허리를 휘감아 돌아가는 섬진강의 고즈넉한 풍경은, 사람을 상념으로 몰고갔다. 

 

선생도 한참 강줄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물줄기를 보고 무엇이 떠오르느냐?!"

 

"첫사랑이요."

 

현이 눈을 지긋이 감으며 말했다. 

 

"섬진강은 아니었지만, 첫사랑 그녀와 강변에서 찐한 추억을 만들었죠. 스승님도 첫사랑 떠오르시죠? 어떤 여자였어요? 예? 말 좀 해 주세요."

 

"그런걸 물어본게 아니다. 내 말하지 않았느냐?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눈에 필터를 끼어야 한다고."

 

"엥? 렌즈요? 필터?"

 

"그래! 필터, 사주필터 말이다. 사주를 공부하려면 세상 모든 것을 사주적인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는 그 말이다. 모든 것을 음양오행으로 환산해보고, 사주의 이론을 먹고 마시고 싸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적용시켜야 한단 말이다."

 

묘는 알겠다는 듯 이 고개를 끄덕였고,

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럼 다시 물어보마, 이 섬진강 물을 보고 떠오르는 간지를 말해 보거라."

 

"강물이면요! 癸(계수)요. 계수! 맞죠? 맞죠? 나 맞았지 묘야~"

 

"그래? 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선생이 뒤따라오던 묘를 돌아보며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계수는 음수(陰水)인데, 음수라고 하기엔..음수라고 하기엔 너무 그 흐름이 당당합니다. 하지만 또 양수(陽水)인 壬(임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 좀더 상세하게 말해 보거라."

 

"선생님께서 예전에 음수인 계수는 손에 잡히지 않은 물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물은 물인데 손에 잡히지 않는 물, 느낄 수는 있는데 만질 수는 없는 물, 물안개, 수증기 같은 느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계수는 계곡물로 볼 수도 있는데, 계곡물은 물의 흐름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는 점, 조금만 가물어도 금세 말라버린다는 점에서 계수로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주 잘 기억하고 있구나."

 

선생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섬진강 특히 이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쪽의 섬진강은 그 흐름이 매우 유려하고 당당합니다. 수량이 풍부한 편이라 음수인 계수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양수라고 보면 되겠구나."

 

"헌데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것이.."

 

묘가 머뭇거렸다.

 

"야~ 계수면 계수고, 임수면 임수지, 뭐가 이렇게 어려워? 강물이면 계수 아냐? 계수 맞죠? 스승님? 스승님?"

 

"이그 이 화상아~ 너처럼 A=B다는 식의 공부는 어떤 공부라고 했냐? 썩어문드러질 공부라고 했냐 안했냐?"

 

"아이 진짜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저도 묘처럼 대답할 수 있어요. 계수 같기도 하고, 임수 같기도 합니다. 쪼금 애매합니다. 딱 어중간합니다요. 계수반 임수반, 절반!"

 

"저 화상 말은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이 섬진강 물이 양수인 임수가 아닌 이유는 또 무어냐?"

 

 

"임수의 특징은 두 가지라고 말씀하셨죠. 첫째, 거침없이, 미련없이 흘러갈 것.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지 못하면 임수가 아니다. 둘째, 그 속이 들여다보이면 임수가 아니다. 임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짙고 어두운 물결이다."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런데 섬진강은 임수라고 하기에는 그 스케일이 작은 느낌이 듭니다. 방금 말한 두가지 조건에는 충족하는 것 같은데, 한가지가 마음에 걸려서요.."

 

"야, 말을 좀 빨리 빨리 해봐.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잠자코 듣고 있던 현이 묘를 재촉했다.

 

"임수는 은하수,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은하수, 대륙 하나를 넣고 빨아도 충분할 만큼 넓은 바다, 너무나 대책없이 넓고 깊어서 말문을 막히게 하는, 범접할 수 없는, 손 댈 수 없는 스케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에 비하면 지금 저희 눈 앞에 있는 섬진강은 작은 강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수도 아니고, 임수도 아니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아, 그런 뜻이었어? 묘! 쪼끔 하는데~ 나보다 배움이 늦지만, 진도가 빨라~ 곧 나를 따라 잡겠는데? 허허허 신통하네. 신통해.."

 

현이 호들갑을 떨어대니 선생이 현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제발 부탁이니까. 묘의 절반만큼만 하거라. 응? 응?"

 

"아 찌르지 마세요. 아파요. 아프다니까요. 사람 잡네. 여기 사람 잡아요~"

 

현이 부산을 떨며 멀리 도망을 가자, 선생이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다. 이 섬진강, 특히 하동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섬진강은 작은 강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큰 강도 아닌 규모다. 하지만 전라도 동쪽의 강물을 모두 끌어모아 바다로 가기 직전의 길목에 있으니, 그 흐름을 무시하기는 어렵지, 완만하지만 크고 넓게 휘어져 나가는 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계수로 볼 수는 없는데, 그 깊이가 얕아 임수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섬진강이 좋다."

 

"임수도 계수도 아닌 그런 점에서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광양인데, 거기는 곧 바다야, 네가 보는 이 강물이 흘러 30분 후면 최종 종착지인 바다에 닿는다는 말이다. 나는 강물과 바다의 경계, 임수와 계수의 중간에서 오는 그 아슬아슬함이 좋다. 산그늘이 섬진강으로 내려올때의 그 처연함 말이다. 하루가 저무는 시점, 가을의 길목에 스산함 바람이 불어오는 시점, 양에서 음으로 음에서 양으로  넘어가는 그 아득하고도 미묘한 지점이 좋다."

 

"밤이 되면 술 드실라고요? 그래서 좋죠? 밤이 막 기다려 지지 않습니까 스승님? 이제보니 우리 스승님 완전 술꾼이네."

 

어느새 현이 와서 너스레를 떨어댔다.

 

선생은 짐짓 현의 말이 들리지 않는듯 강물을 응시했다. 마치 거기에서 도를 찾을 수 있다는 듯이.

 

대화는 끊어졌고, 셋은 강을 따라 한참 걸었다. 

 

왼편에서 자동차들이 휙휙 지나가고, 강물은 오른편에서 그들 옆을 달렸다.

 

하동읍으로 접어드는 삼거리가 나오자 그들은 섬진강과 눈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섬진강을 등지고 걷기 시작하자 묘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저번에 최고의 사주상담 나쁜쪽 이야기 안해주셨는데요.."

 

"아 그랬던가?"

 

"네, 횡계에서 있었던 일 말씀해 주셨었어요.."

 

"아 안반덕에서 그 이야기 말이구나, 그래, 나쁜 쪽이야기 해줘야지. 우리 스승님은 손님을 두 부류로 나누셨다. 뭔가 기대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 적당한 불행을 견디며 그럭저럭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앞으로 잘될거야 하고 말씀을 해 주셨지."

 

"저번에 말씀하신 그 이야기군요."

 

 

"그래 맞아, 좋은 쪽 이야기였지, 나쁜 쪽으로는 말이다. 손님들의 절반 정도는 엄청난 불행 앞에 삶이 완전히 박살난 사람들이었어. 지옥을 뚫고 살아온 사람들이었지. 스승님은 이런 경우에는 사주를 열어보셨다. 실제로 사주원국을 꼼꼼히 보시고 뭔가 나름의 궁리를 하셨지."

 

"좋은 쪽과 정반대군요. 좋은 쪽은 아예 사주를 안보셨잖아요.."

 

"그래 맞아, 그러고 나서는 대뜸 이렇게 말씀하시더구나. '참 거지같은 팔자네잉. 이 팔자는 관이 있기는 있는디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부러가지고, 오메, 오메, 내 울타리가 되기는 커녕, 내 목을 조르고 자빠질 팔자구마잉, 니미 염병헐 것이, 아예 없어불등가, 있을라믄 튼튼하든가, 비실비실하니 똥오줌도 못가리는 11살짜리 애기 서방 키우는 팔잔디? 차라리 애기라믄 애긴갑다 하고 참고 키우겄는디, 똥오줌도 못가리는 놈이 지 잘났다고 일은 벌이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참말로 죽이도 못허고 살리도 못허고, 천불이 난다 내가 천불이 나, 그 모진 세월 어찌 살았소~'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셨다. 100이믄 100 이런식으로 말씀을 하셨지. 거지같은 팔자라고, 참말로 모진 세월이었다고."

 

"그런 말이 상처가 될 텐데요. 사람은 자기 사주가 좋은 사주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잖아요.."

 

"이 경우는 달라. 스승님은 길게 말씀하셨지만 손님들은 첫 마디에 울음을 터트리고 한참을 울기만 한다. 스승님 말을 듣지도 않아. '참 거지같은 팔자네잉' 이 소리만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야."

 

"......"

 

"지옥을 건너온 사람들,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해본 사람들은 이 말이 듣고 싶은거야. 스승님은 그걸 너무 잘 아셨던 거고. "

 

"무슨 말을요?"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삶이 이렇게 된 것은 네 책임이 아니다. 사주 때문이야. 니가 잘못한게 아니야. 네가 너를 지옥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자책하지마, 제발 자책하지마."

 

"......"

 

"네가 겪은 지옥, 그거 전부 네 잘못이 아니다. 다 사주 때문이야. 네 팔자 때문이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팔자를 타고 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악몽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야. 그러니 용서해. 그때 그 선택을 한 너를 용서해."

 

"선생님.."

 

"응?"

 

"지금 그 말씀 저에게 하신 말씀인거죠?"

 

묘가 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생의 제자로 들어오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생은 짐짓 묘의 질문을 모른체 하며 말을 이었다.

 

"운명결정론이라는 것이 참 고리타분하고 구식의 사고방식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지. 특히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따라 인간의 삶의 규정된다는 것, 얼마나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냐. 특히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서구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도 안되는 미신의 영역일게다. 과학적 관점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 즉 과학적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자만하지.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 원인과 결과-산출과 투입의 일관성을 강조하면, 결국 그 책임은 오롯이 나약한 인간이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불행한 결과의 모든 책임은 결국 그 선택을 한 인간에게 있다.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말이냐. 심지어 기득권 세력은 이 논리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 당신들이 게으르고 나태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논리로 말이다."

 

"결국 스승님은 운명 결정론자이신가요?"

 

현이 끼어들었다.

 

"또 1+1=2와 같은 질문을 하는구나, A=B의 공식대로 생각하면, 절대 발전할 수 없고 사물의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 나는 운명결정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의 의지대로 삶이 완전히 변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임수와 계수의 사이라고나 할까? 섬진강이라고나 할까? 사주명리는 딱 그 중간에 있어야 해. 그 중간에서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어야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 그중 하나를 지지하는 순간 굳어버리게 되고, 그 순간 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데요. 저는 딱 중간 지점에 서있습니다."

 

"예끼 이놈, 이놈은 매가 약이여. 매 어딨어?"

 

두 사람이 부산하게 까부는 동안 묘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러면 결국 선생님의 선생님께서는 좋은 쪽, 나쁜 쪽 모두 그냥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신건가요?"

 

"맞다. 결국 그게 최고의 사주 상담 아니겠느냐? 뭐 상담이 대단한 것인줄 알았느냐? 미래를 예측해? 감히 인간이? 한 사람과 진실된 대화를 나누면서, 그 사람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는 것 만큼 훌륭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그 사람의 아픔과 고민을 더 잘 들여다 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다. 그게 사주 공부하는 사람이 항상 되새겨야할 마인드야. 알겠느냐?"

 

현이 오버하며 큰절을 했고, 묘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아참, 나는 애인 만나러 가야 하니까. 너네들은 알아서 시간들 잘 보내거라. 내일 점심 때 쯤에 읍내에서 보자꾸나."

 

"아니, 스승님~~"

 

현이 소리치며 따라갔으나 선생은 저멀리 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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