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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인시에 시작한다 (현묘의 인시일수론)

2025. 9. 3. 17:40현묘의 사주 이야기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오늘은 자시와 축시에 태어난 분들의 일주가 바뀌는 주제, 즉 "하루는 인시에 시작한다."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간단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닌만큼, 차분히 말씀을 드려보죠. 

 

- 차례 - 

 

1. 들어가며

2. 일년의 시작과 하루의 시작이 왜 달라야 하는가?

3. 기준점이 되기 위해서는

4. 12개의 팔

5. 갑을병정, 자축인묘

6. 지장간의 관점

7. 결론(요약)

8. 적용방법

9. 나가며 (feat.k명리)

 

 

1. 들어가며

 

저는 블로그에서는 운세 컨텐츠와 명리의 기본 지식에 대해 쉽게 풀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네이버 블로그로 시작하여, 2019년 티스토리 블로그로 옮긴 이후 햇수로 7년, 만6년째 명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블로그는 사주명리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제 책이나 상담사 양성 프로그램은 사주를 해석하는 일관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서는 십이운성이나 공망, 신살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책이나 상담사 양성 프로그램의 교재에는 해당 내용이 없습니다. 

 

제가 사주를 해석할 때 해당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블로그에는 천간합화에 대해 자세히 정리되어 있지만, 책이나 상담사분들의 교재에는 천간합에 대해서는 비중있게 다룰 뿐 천간합화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사주명리가 가지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즉 책과 인터넷 매체, 강의를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은 분명 멋있고, 이론적 정합성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상담의 현장에 적용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양한 이론 중에 어떤 이론을 적용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는 접어두고서라도, 단순한 하나의 이론도 현실의 사주해석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수많은 예시가 있겠지만, 오늘 주제에 어울리는 예시는 바로 "정자시 VS 야자,조자시"입니다. 

 

저는 처음에 사주를 배울 때, 하루는 자시(표준시로 밤 11시)에 시작한다고 배웠습니다.

 

왜 해시나 인시가 아니고 자시냐? 하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고, 60간지의 지지가 "자,축,인,묘..." 순으로 나아가니 자시인가 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자정에 시작한다는 "야자,조자시" 이론은 뭔가 어색하고 인위적으로 보였습니다.

 

사주명리에서는 하루를 12시간 체계로 구분하는데, 야자,조자시 이론은 24시간 체계로 구분하는 것이니 억지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상담을 진행해보니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자시의 시작을 기준으로 사주를 풀면, 숨이 턱턱 막히고 사후적인(결과론적) 끼워맞추기 식으로 상담을 진행해야 했는데, 야자,조자시의 자정 기준으로 사주를 해석하니 정말 앞뒤가 딱딱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시에 하루가 시작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하루는 마치 자정에 시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무엇인가에 홀려서 잘못 판단을 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전제(하루는 자시에 시작한다)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주제에 대한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일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 일년의 시작과 하루의 시작이 왜 달라야 하는가?

 

일년은 입춘에 시작합니다. 

 

2025년 양력 2월 3월이 입춘이므로, 2025년 2월 2일은 갑진년이고, 2월 4일부터 을사년이 시작됩니다. 

 

간지로 말씀드려보면, 인(寅)월에 일년이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월주라는 톱니바퀴가 축월에서 인월로 바뀌는 타이밍에, 연주라는 톱니바퀴가 한칸 이동하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월주의 톱니바퀴가 한바퀴 돌면, 연주의 톱니바퀴가 한칸 이동하는데, 월주의 톱니바퀴 축월과 인월의 사이가 연주가 이동하는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자시론, 혹은 야자,조자시론에 따르면

 

하루는 자시의 시작이나, 자정에 시작합니다. 

 

2024년 11월 24일은 임진일이고, 25일은 계사일입니다. 

 

즉 자시론에 따르면 11월 24일 밤 11시에 계사일이 시작되고, 

 

야자,조자시론에 따르면 11월 24일 밤 11시 59분까지 임진일이고, 11월 25일 새벽 0시 0분에 계사일이 시작됩니다. 

 

간지로 말씀드려보면, 자(子)시의 시작이나 중간(子正)에 하루가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시론을 예로 들면) 시주라는 톱니바퀴가 해시에서 자시로 바뀌는 타이밍에, 일주라는 톱니바퀴가 한칸 이동하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시주의 톱니바퀴가 한바퀴 돌면, 일주의 톱니바퀴가 한칸 이동하는데, 시주의 톱니바퀴 해시와 자시의 사이가 일주가 이동하는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현행의 방식(2000년동안 이어온 방식-중국에서는 동한시대 이후로 인월을 세수로 삼았습니다.-)에 따르면, 

 

일년이 시작하는 곳은 인월이 되고, 하루가 시작하는 곳은 자시(혹은 자정)이 되는 것입니다. 

 

일년의 시작점과 하루의 시작점이 다릅니다. 

 

일관성이 없습니다. 

 

만약 일관성 있는 논리라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 일년의 시작  
자시에 시작한다.(밤 11시) 자월에 시작한다.(12월 7일경) 일관성 있음
자정에 시작한다.(밤 12시) 동지에 시작한다.(12월 22일경) 일관성 있음

 

자시에 하루가 시작한다고 주장하는 분은 일년은 자월에 시작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자정에 하루가 시작한다고 주장하는 분은 일년은 동지에 시작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일년의 시작 하루의 시작  
동지에 시작한다. (12월 22일경) 자정에 시작한다. (밤 12시) 일관성 있음
입춘에 시작한다. (2월 4일경) 인시에 시작한다. (새벽 3시) 일관성 있음

 

동지에 일년이 시작한다고 주장하는 분은 하루는 자정에 시작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입춘에 일년이 시작한다고 주장하는 분은 하루는 인시에 시작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일관성이 없는 점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논리는 

 

첫째,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음의 극단이자 양의 시작점인 동지에 어떤 기운이 시작하는 것이 맞지만, 그 기운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시간차가 발생한다. 그래서 일년은 동지에 시작하지만 실제로 지구에서는 입춘에 해가 바뀐다. 

 

둘째, 일년의 시작점과 하루의 시작점이 다른 이유는 일년이라는 기운과 하루라는 기운은 전혀 다른 성격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일년은 공전을 의미하고 하루는 자전을 의미한다. 얼마나 다른 운동인가? 그러니 일년이 시작하는 지점과 하루가 시작하는 지점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일 것입니다. (더 다른 논리가 있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 항변의 주장들은 굉장히 허술하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명리의 대전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항변에 대한 반박을 해보겠습니다.

 

우주에 어떤 기운이 떠다니고 있고, 그 기운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데 시간차가 있다면? 그러한 기운이라는 것은 얼마나 변덕스럽고 가변적일까요? 얼마나 임의적이고 주관적일까요?

 

임의적이고 주관적이고 쉽게 바뀌는 기운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측정하고 파악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 미치는 기운을 일관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하고 파악해서 성향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명리학 아니었나요?

 

그리고 그 기운의 시간차가 왜 일년이 바뀌는 것에만 적용되고, 하루가 바뀌는 것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둘째 항변에 대한 반박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4주라는 말보다, 2주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사주는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고, 시간이 분절되어 있고,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명리의 대전제인데 시간이라는 것은 곧,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운동에서 비롯됩니다. 

 

지구의 공전을 의미하는 연주와 월주의 묶음, 지구의 자전을 의미하는 일주와 시주의 묶음 

 

공전과 자전의 2묶음으로 구성된 것이 명리의 체계입니다. 

 

 

두번째 항변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공전운동과 스스로 도는 지구의 자전운동은 명백히 다른 성질을 가진 운동이므로

 

그 두 운동에서 비롯된 연월주의 묶음과, 일시주의 묶음은 다른 성질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그 시작의 기준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년운동과 하루운동은 다르니까, 일년의 시작점과 하루의 시작점도 다른거야!" 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는 억지입니다. 

 

일년운동과 하루운동이 다르다면, 연월주와 일시주에 전혀 다른 체계를 써야 할 것입니다. 

 

연월주는 28간지를 사용하고, 일시주에는 60간지 사용하는 등 말이죠. 

 

그런데 연월주와 일시주에 완전히 똑같이 천간 10개 지지 12개의 체계를 쓰면서, 

 

"공전과 자전이 완전히 다른 운동이니까 월주와 시주의 시작점만 조금 다른거야!"

라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요?

 

또한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를 통해 명리의 놀라운 대전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명리의 놀라운 대전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대전제 살펴보시죠.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이 사실 전혀 다른 운동방식을 보이고 있지만, 태양에너지의 순환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결과를 빚어냅니다.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은 그 운동방식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태양에너지의 규칙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므로 하나의 체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60간지의 순환이라는 하나의 체계로써 서로 다른 운동인 공전과 자전 운동의 결과를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게 대전제가 되냐면,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연월주, 즉 공전의 운동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60간지의 체계를 쓰고,

일시주, 즉 자전의 운동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60간지의 체계를 똑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월,일시에 모두 60간지를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정말 놀랍게도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이 결과적으로는 같은 패턴과 방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4주(엄밀히 말하면 2주)에 모두 60의 주기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의 결과가 인간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연월주와 일시주에 각각 다른 주기성을 가진 각기 다른 기호체계(순환체계)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전혀 다른 2개의 만세력이 필요했겠죠. 공전 만세력, 자전 만세력을 따로 만들고, 그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리의 체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60개의 주기성을 가진 하나의 간지 체계를 바탕으로 서로 성질이 다른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을 파악하고 구분합니다. 

 

이것이 함의하고 있는 명리의 대전제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운동은 다른 운동처럼 보이지만, 태양에너지의 주기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태양에너지의 주기적 변화라는 동일한 결과는 60간지의 규칙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입니다. 

 

두번째 항변(다른 성질의 운동이니 시작점만 다르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명리의 대전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본인의 일관성 없음을 섣불리 변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상으로 일년의 시작점과 하루의 시작점이 다른 것은 일관성의 측면에서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말씀을 드려보았습니다. 

 

일관성이 다른 부분에 대한 예상되는 항변의 주장도 제시하고, 반박도 해 보았습니다. 

 

명리의 사주 체계에 동일하게 60개의 간지를 사용한다는 점이 가지는 놀라운 의의는 공전과 자전이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의미를 빚어내는 운동이라는 점이고, 공통된 60간지의 체계로 파악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연월주, 일시주에 동일한 60간지 체계를 적용해야 하며, 60간지의 시작점(하루나 일년의 시작점)은 같아야 합니다. 

 

즉 인월에 일년이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인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혹은 자월에 일년이 시작된다면 자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주장해야 하죠. 

 

그러면 다음 챕터에서는 왜 자시가 아니고 인시인가?

 

왜 자수가 아니고 인목인가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3. 기준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기서 시간의 분절점에 대해 좀더 논의를 좀더 해야 합니다. 

 

사주의 대전제는 바로 시간이 분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곱씹어 볼수록 대단한 발견이자 통찰입니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분절되어 있다니..

 

사주를 미신이나 무속으로 생각하고 무시하는 분들, 과학적이고 이성,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갖춘 분들이 넘지 못하는 허들이 바로 이겁니다. 

 

갑자일에 태어난 사람과 을축일에 태어난 사람이 각기 다른 기운을 가지려면, 갑자일과 을축일 사이에는 명확한 분절점이 존재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상식이 대개 진실과는 거리가 있죠.)

 

사주는 날과 날, 시간과 시간, 해와 해 사이가 명확하게 분절되어 있고, 이 분절된 조각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을 전제로 이론을 전개합니다. 

 

대중, 사주 동호인들이나 현업 상담사분들 모두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사실은, 시간의 분절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죠. 

 

시간의 분절이라는 대전제 위에서만 사주의 모든 이론이 설 수 있으니까요. 

 

사주의 전제 : 시간의 분절, 작은 분절점

 

각 천간과 천간, 지지와 지지를 가르는 기준점을 작은 분절점이라 부른다면, 하루와 일년이 바뀌는 기준점은 큰 분절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일반론인 입춘세수론과 자시일수론의 분절을 그림으로 확인하죠.

 

 

 

 

입춘세수론의 경우, 축토와 인목 사이에 대전환과 분절이 이뤄진다. 따라서 일년은 인월에 시작한다는 이론은 그림으로 볼 때 어색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자시일수론의 경우, 해수와 자수 사이에 대전환과 분절이 이뤄진다. 따라서 하루는 자시에 시작한다는 이론은 그림으로 볼 때 어색해 보입니다. 

 

왜일까요?

 

색깔 때문입니다.

 

사주이론가들은 천간이든 지지든 계절의 의미, 오행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지지의 경우 12 조각으로 나눌 수 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계절로 나누면 4조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봄(목, 인묘진) 여름(화, 사오미) 가을(금, 신유술) 겨울(수, 해자축)이죠. 

 

12조각 4덩어리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오는 대 전환, 즉 전체 사이클의 시작점은 당연하게도 4덩어리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즉 봄의 시작, 혹은 여름의 시작, 혹은 가을의 시작, 혹은 겨울의 시작점이 대전환점이 될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자시일수론의 그림을 보시죠?

 

하루가 바뀌는 대전환점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계절의 중간에 끼어있습니다. 

 

논리적 일관성이 심하게 떨어집니다. 

 

만약 지지가 분절되어 있고, 각 계절의 고유의 의미가 있다면, 당연하게도 대전환점은 계절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자시일수론은 겨울의 중심에 대전환이 일어난다고 주장을 담고 있으므로 이치에 맞지 않으며, 

 

하루의 기준은 일년의 기준과 동일하게 인목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새 생명은 봄에 태동합니다. 하루도 예외가 아닙니다. 봄에 시작합니다. 

 

 

 

 

4. 12개의 팔

 

사주의 경우의 수가 연60간지×월60간지×일60간지×시60간지 = 12960000 이 아니라는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경우의 수는 연60간지×월12간지×일60간지×시12간지 = 518400 입니다. 

 

이 의미를 곱씹어 보면, 

 

첫째, 사주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연과 일이라는 사실, 

 

둘째, 연과 일에 위치한 개별 간지는 각기 12개의 팔을 거느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는 소개되고 있지 않지만, 12개의 팔 이론은 인시일수론, 묘운력, T존, 자리의 의미 등 현묘의 사주관법의 핵심이론입니다.)

 

연주, 일주가 60간지, 월주 시주가 12간지라는 것은

 

먼저 과거에는 사주의 기준이 연지(연주)였고, 현재는 일간이라는 것의 이론적 토대가 됩니다.

 

즉 월주와 시주는 기준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월주와 시주는 연주와 일주를 통해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월주와 시주는 메인이 아니라 보조, 몸통이 아니라 팔입니다. 

 

혹은 연주와 일주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표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주와 연주에 놓인 각 개별 간지는 총 12개의 고정된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12개의 표정이 하나의 간지의 특성을 좌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임수의 경우 12개의 표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임인, 계묘, 갑진, 을사, 병오, 정미, 무신, 기유, 경술, 신해, 임자, 계축입니다. 

 

병진시주나 정사시주를 가진 임수일간은 없는 것이죠.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임수의 캐릭터는 12개의 조합으로써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은 "니가 가진 12개의 표정이 곧 너야!" 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저는 하나의 간지와 12개의 조합을 몸통과 팔이라는 용어로 표현했으며, 이 이론이 바로 12개의 팔이론입니다. 

 

12개의 팔은 간지의 고유한 개성을 암시하며, 12개의 팔과 간지의 관계를 잘 고찰하면 하나의 간지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분들과 함께 즐겁게 12개의 팔 이론에 대해 연구중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이론처럼 일년은 인월에 시작하고 하루는 자시에 시작한다면, 

 

연주에 위치한 간지가 거느리는 12개의 팔과 

일주에 위치한 간지가 거느리는 12개의 팔이 달라지게 됩니다. 

 

임수를 예로 들면, 

 

연주에 위치한 임수는 임인, 계묘, 갑진, 을사, 병오, 정미, 무신, 기유, 경술, 신해, 임자, 계축의 팔을 거느리지만

 

일주에 위치한 임수는 경자, 신축, 임인, 계묘, 갑진, 을사, 병오, 정미, 무신, 기유, 경술, 신해의 팔을 거느립니다. 

 

거느린 팔 중 2개가 다릅니다. 

 

2개가 다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그거 외우거나 공식(시두법, 월두법)으로 만들어서 쓰면 되지 않냐? 고 할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봅시다. 

 

연주에 위치한 임수와, 일주에 위치한 임수가 각기 다른 임수입니까?

 

같은 임수입니다. 놓인 위치만 다를 뿐 임수는 임수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같은 임수라면, 임수 특유의 고유성이 있을 것이고, 그 고유성은 12개의 팔로써 표현됩니다. 

 

같은 임수인데, 거느리는 월주와 시주 조합은 다르다는 것이 입춘세수+자시일수론을 쓰는 분들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월주와 시주의 조합이 다르다면, 그것은 같은 임수가 아닙니다. 

 

팔이 다르면, 몸통이 달라집니다.

몸통이 같은데 팔이 약간 다르다는 것은 전체 체계를 무시한 발상입니다. 

 

하지만 연주나 일주에 배속되어 있는 월주와 시주 조합은 그저 공식으로 외우고 읊을 정도로 넘어갈 수준의 논리가 아닙니다. 

 

앞으로 깊이 탐구되어야 할 주제입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 보죠. 

 

하나의 간지의 고유성은 그 간지의 시간을 12개로 분할한 조각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하나의 간지가 거느리는 12개의 팔은 고정되어 있으며,

그 간지가 일주에 놓이건 연주에 놓이건 간에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년의 시작점과 하루의 시작점은 같아야 합니다. 인목으로써 말이죠. 

 

 

5. 갑을병정, 자축인묘

 

너무나 간단하지만 쉽게 지나쳐버린 이야기 해보죠. 

 

천간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갑을병정" 즉, 갑목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즉 만물의 시작, 순환의 고리에서 출발점은 봄, 오행 목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간, 분절된 시간의 시작점이 바로 오행 목부터라는 것이죠. 

 

만물의 시작이 봄이라는 것은 오행의 순서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행의 순서를 따질 때 목-화-토-금-수의 순서로 배치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시작점이 오행 목부터라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지지의 출발점은 어디가 되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자수가 아니라 인목입니다. 

 

 

또한 음양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드려보죠. 

 

양과 음에서 순서를 따지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음양이 교접해 있고, 중첩/혼재되어 있으니 그 순서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음양이 평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에는 정확하게 순서가 정해져 있죠.

 

그렇다면 먼저 오는 것과 나중에 오는 것이 명백히 구분됩니다. 

 

시간의 순서로 따졌을 때, 양이 먼저입니까? 음이 먼저입니까?

 

음이 먼저라구요? 무에서 유가 탄생하니?

 

아닙니다. 

 

양이 먼저입니다. 

 

천간과 지지 중 계절과 대응하는 지지를 한번 살펴보죠. 

 

인묘진, 사오미, 신유술, 해자축

 

각 지지를 의미하는 지지들을 배열하고 그 음양을 따져보면 어떻습니까?

 

각 계절을 시작하는 지지의 음양이 어떻게 되나요?

 

인목, 사화, 신금, 해수 모두 양간이 지장간의 본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계절을 여는 역할, 시간적 순서에서 앞에 나서는 역할은 양이 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이 높은 것, 양이 좋은 것, 양이 선한것이 아니라, 양이 먼저입니다. 

 

먼저와 나중에 윤리, 도덕, 선악, 상하의 개념을 덧씌우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한해의 시작, 하루의 시작은 음이 담당합니까? 양이 담당합니까?

 

당연하게도 양이 담당합니다. 

 

따라서 지지의 시작은 음간이자, 오행 수에 해당하는 자수가 아닌, 

 

양간이자 오행 목에 해당하는 인목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60간지의 시작점을 교체해야 합니다. 

 

60간지는 갑자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갑인부터 시작합니다. 

 

명리적 관점에서 우주는 갑인에서 시작해 계축에서 끝을 맺습니다. 

 

갑자와 계해의 조합보다 훨씬 어울리지 않나요?

 

갑인이 가지는 대책없이 강한 추진력, 

 

그리고 계축이 가지는 극한의 음의 기운 

 

처음과 끝의 역할을 담당하기에 너무 어울립니다. 

 

육십 간지의 배열을 바꿔야 합니다. 

 

천간은 갑을병정...이고

지지는 인묘진사오미...입니다. 

 

 

6. 지장간의 관점 

 

다음은 지장간의 관점에서 인목이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입춘세수, 인시일수론의 관점에서 

 

인목은 시작이며, 대전환의 분기점입니다. 

 

그렇다면 지장간의 관점에서 어떤 암시와 힌트가 있지 않을까요?

 

살펴보겠습니다. 

 

 

인시일수론의 관점에서 지지를 살펴보면 축토는 마지막, 인목은 시작의 의미가 있습니다. 

 

축토가 마지막이라면 기운의 끝, 소멸의 의미가 

 

인목이 시작이라면 기운의 시작, 생성의 의미가 지장간에 표현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체 지장간을 살펴보죠. 

 

12개의 지지의 지장간 중 가장 끝, 소멸의 기운이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축토입니다.

 

축토의 지장간을 살펴보면, 계수, 신금, 기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음간이며, 기운 상 내리막, 즉 음토, 금, 수에 해당하는 기운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끝과 소멸을 의미하기에 참 적절하죠. 

 

또한 중요한 분절점은 그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완충역할을 하는 토가 필요하죠. 

 

그래서 지지에서 계절의 분기점에는 오행 토의 기운이 배속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 하루와 일년의 대분기점에도 완충역할을 하는 기운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축토의 지장간 기토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지에서 기토는 양의 끝과 음의 시작(미토) 음의 끝과 양의 시작(축토)에 모두 관여하고 있으니 참으로 위대한 완충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12개의 지지의 지장간 중 가장 생성, 시작의 기운이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목입니다. 

 

인목의 지장간을 살펴보면, 무토, 병화, 갑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양간이며, 기운 상 오르막, 즉 양토, 목, 화에 해당하는 기운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성과 시작을 의미하기에 참 적절하죠. 

 

축토와 인목을 비교하면, 정말 딱 반대되는 기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V 자를 그리듯 소멸과 생성, 끝과 시작이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장간의 구성을 보더라도 

 

축토가 지지의 끝이며, 인목이 시작이라는 것을 너무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쩔 때는 자수가 시작점이고, 어쩔 때는 인목이 시작점인것이 아니라, 

 

시작점은 항상 인목입니다. 

 

 

7. 결론(요약)

 

위의 주장를 요약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주장 : 일년의 시작점이 인목인 것처럼 하루의 시작점도 인목이다. 

(하루는 인시에 시작한다.)

 

근거 1. 연월주와 일시주에 같은 60간지 체계를 쓰면서, 월주와 시주의 시작점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다. 

연월주와 일시주에 60간지 체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작점을 적용해야 한다. 

 

근거 2. 자시에 하루가 시작한다는 이론에 의하면 계절(겨울)의 중간에 대분기점이 있다는 논리인데, 대분기점이라면 계절과 계절의 사이에 위치해야 한다. 따라서 일과 일, 연과 연을 나누는 대분기점은 겨울과 봄의 분기점인 인목이다. 

 

근거 3. 월주와 시주는 연주와 일주에 놓인 간지의 고유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연-월주의 배치 순서와, 일-시주의 배치 순서가 같아야 한다. 

 

근거 4. 명리의 기본 이론에서 천간의 시작이 갑목이며, 오행의 시작이 목이라는 것은 시간은 오행 목 혹은 양목에서 시작한다는 것의 증거이다. 따라서 지지 역시 자수가 아닌 인목에서 시작해야 한다. 

 

근거 5. 음간과 양간의 역할을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면, 양간은 시작에 관여하고, 음간은 중심에 관여한다. 따라서 연과 일이 바뀌는 대분기점의 시작은 양간이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양간인 인목에서 하루가 시작한다. 

 

근거 6. 지장간의 관점에서 축토를 이루는 지장간은 끝과 소멸을 암시하며, 인목을 이루는 지장간은 시작과 생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연와 일의 분기점은 인목과 축토 사이가 되어야 한다. 

 

 

8. 적용방법

 

인시일수론은 적용해야 하는 시주는 자시와 축시입니다. 

 

즉 자시, 축시에 태어나신 분들의 경우, 그 전날의 일주로 변경하면 됩니다. 

 

다른 것은 조정할 필요가 없고 일주만 바꾸면 됩니다.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기존의 일반적인 만세력에 2025년 9월 3일 02:00의 사주를 넣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자시에 하루가 시작한다는 관점에서는,

 

병자시부터 을해일이 시작된 것이겠죠?

 

이 사주의 경우 정축시니 역시 을해일입니다. 

 

하지만 인시에 하루가 시작한다는 인시일수론의 관점에서는 축시까지 전날로 계산해야 합니다. 

 

즉, 정축시까지 갑술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사주는 이렇게 바꾸면 됩니다. 

 

다른 것은 그대로 이구요. 오직 일주만 전날 일주로 바꾸면 인시일수론의 관점에서 사주를 뽑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정리하면, 

 

자시, 축시에 해당하는 사주를 가진 분들은

 

일주만 전날의 일주로 바꾸면 됩니다. 

 

그리고 그 일주 기준으로 십신 등을 다시 산출해 보면 되겠죠. 

 

참 쉽고 간편하죠?

 

표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죠. 

 

 

 

 

9. 나가며(feat. K명리)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분들, 특히 철학관을 운영하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철학이 무엇입니까?

 

철학은 지극한 도라서, 기이하고 오묘하며, 신비하고 알 수 없는 무엇입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지이며,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성스러운 내적인 작용입니까?

 

아니죠. 

 

누구도 철학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이치에 맞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름과 달을 논하고, 정신수양을 강조하는 사람이 철학자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과정을 통해 사물을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심지어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크라테스마저 논증의 과정이 이성과 논리, 합리를 벗어날 때는 신랄하게 비판받습니다. 

 

"논증을 펼칠때 부정직하고 궤변을 부리며, 사심 없는 지식 탐구가 아니라 사적 사고로 자신이 동의할 만한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지성을 쓴다. 그를 보면 점잔 빼고 겉으로만 감동을 주는, 나쁜 성직자의 전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 소크라테스는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 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다." - 버트런드 러셀 "러셀의 서양철학사" (P209~P210)

 

이성과 합리, 논리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서 진리가 드러나고, 그 진리가 남들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2000년 넘게 우리가 굳게 믿어온 자시일수론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쓰고, 인시일수론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2023년 봄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 작년 11월 논리적으로 결론에 도출했고 현재까지 다양한 임상사례를 통해 검증을 거쳤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성과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민한 끝에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주명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 때,

 

사주명리의 발전은 맹목적 신념, 권위자에 대한 추앙, 가볍고도 뜨거운 대중적 유행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냉철하고 진지한 철학적 자세만이 사주명리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중국명리와 우리 K명리의 구분점은 인시일수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시일수론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K명리의 가장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특이점이 될 것입니다. 

 

두근두근 흥미롭지 않은가요? 

 

과연 인시일수론이 K명리를 대표할 만한 특이점이 될 수 있는지, 기존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함께 대화해 보시죠. 

 

구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질문과 의견, 본인의 임상경험 환영합니다.

 

댓글로 남겨주시면 기쁘게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즐겁게 소통해 보시죠. 

 

감사합니다. 

 

 

을사년 현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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