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남는 것에 대하여 "7기 수업을 기다리며"
2026. 1. 6. 02:43ㆍ현묘의 사주 이야기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진화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신년맞이 집안 행사로 서점에서 책을 한권 사오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책 한권이라도 읽자는 취지인데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가족들 중에 가장 늦게, 타박을 한참 당하고 나서야 책을 고릅니다.
빌려서 읽어도 좋은 책과
쑥 훑어볼 수 있는 책,
유행을 타는 책들만 제 눈에 보여서 입니다.
오래두고 즐기면서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는 더더욱 기피합니다.
십여년전에 '스토너'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요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밉게 보이는 심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은 시시하고 직성에 맞지 않습니다.
남들이 다 보았다는 유명한 영화에도 손이 가질 않습니다.
오히려 재개봉한 영화를 보며, 감상에 빠져들거나 (최근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화양연화'를 보았습니다.)
운전하며 철 지난 유행가를 목이 쉬어라 불러대는 타입입니다.
성격이 외곬수이거나 독특한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혼자서 잘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을 알고 싶고, 향유하고 싶고,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내세울만한게 없었던 삶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특별하고 유니크하며, 멋져보이는 그 무엇인가를 얻고 싶고,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0대 중반에 시작한 것이 재즈였고, 와인이었고, 사주였습니다.
재즈는 지금도 즐겨듣는데, 조금만 난해한 곡을 만나면 '이렇게 까지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듣기 편안한 곡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드밥 이하의 자유도를 가진 음악들만 간신히 들으며, 즐기고 있습니다.
와인은 몇 년을 열심히 마셨는데,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동료를 구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혼자 마시면 그냥 알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와인은 애초에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이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사주도 출발은 비슷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하고 멋져보이는 그 무엇인가가 하고 싶고, 갖고 싶어서 시작했지요.
신기해서 책도 보고 강의도 들었지만, 이내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면서, 또 블로그가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강제로 공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공부가 되지 않고, 준비가 미흡한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
도망가거나, 밑천이 바닥나거나, 어떻게든 버티거나
셋 중 하나일텐데, 저는 세번째 선택지를 선택했습니다.
조회수와 칭찬의 댓글이 싫지가 않았던 것이죠.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에너지가 반가웠던 것입니다.
오래토록 간절히 기다려온 "관심"을 받게 되자 그 관심에 부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관심과 인기에 어울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상담을 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하고, 상담센터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현묘'로 활동하는 것이 힘들어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는데,
창피해서 도망가지 못했고, 버텨내다 보니 또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특별한걸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내용이지만,
재즈(음악), 와인, 사주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래 두고 보아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입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향유되어 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 싶기도 했지만,
오래가는 것,
변치않는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몇년 후면 헛되이 사라지는 무언가에 노력과 정성, 소중한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래 가는 것,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
오래 해도 질리지 않는 것,
내 노력과 투자가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오래가는 무엇인가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재즈나 와인, 사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사주 공부를 이렇게 오래, 진지하게, 모든 것을 걸고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주는 문화적 흐름, 유행하는 인문학의 한 분야가 아닙니다.
사주는 인류가 만든 모든 것 중에 가장 오래가는 것입니다.
사주는 절기력에 기반하고 있고, 절기력은 태양의 고도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제 책 '나의 사주명리' 서문에 밝혀져 있듯 사주는 태양과 지구의 관계성에서 비롯된 '무엇'입니다.
모든 것(문화, 종교, 사회, 문명까지)이 다 변해도
인류의 절멸까지 (혹은 인류 절멸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입니다.
그 숨막히는 공전과 자전의 규칙성은, 아주 오래오래 억겁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현대의 문화와 제도,
자유 민주주의라는 단어, 주식회사라는 단어,
가족, 학교, 민족이라는 개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의 유물이 되어있을지 모릅니다.
현재 우리가 당연시 하는 관습들은
미래의 후손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행동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하지만 사주는 어떨까요?
100년, 1000년이 흘러도 여전히 미신이고, 여전히 유사과학일까요?
삶이 괴로워 위로받고 싶은 덜 떨어진 인간들이 집단 환상에 빠져 만들어낸 신앙일까요?
19세기 중반 미국의 특허청장은 특허가 쏟아지자 조만간 새로운 발명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자조했습니다.
1900년경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에는 이제 새로운 발견은 없다고 큰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아직도 우리는 생명에 대해, 우주에 대해, 우리의 터전인 지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아직도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지구의 규칙적인 공전과 자전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공언할 수 있습니까?
갓 태어난 생명체가 생체리듬을 세팅할 때 그 질서를 참조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사주는 위에 제시한 두 개의 가설 위에 서 있습니다.
수많은 오해와 억측, 무식쟁이들 사기꾼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2000년을 버텨냈습니다.
사주가 2000년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절름발이인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 즉 '현실'을 잘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 사주를 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주를 완전히 이상한 방식으로 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주는 오물통과 진흙탕에서 기어이 살아남아
우리 손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가설이 틀렸다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여타 다른 역술 분야가 그러하듯 10년 100년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단순한 하나의 진실 위에 서있기 때문에 수없이 길을 잃었음에도
사주는 진실로써 현실을 비추며
자신의 갈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 단순한 진실을 머금은 채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오래갈 공부를 찾았고, 그 한복판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되뇌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만년을 갈 공부다."
"사주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자."
제일 오래 가는 것,
끝까지 남아있을 그것,
가장 단순한 진실로써 현실을 드러내는 것.
사주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책을 샀나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샀습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권장도서라서, 각 가정에 하나씩 비치되어 있는 책이라서
사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오래오래 두고 읽으며 곱씹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에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보니
사주 그리고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지요.
가장 오래남을, 질서있는 순환에 대한 탐구,
사주는 코스모스입니다.
<유행이 아닌, 진짜 공부 사주 공부의 배에 올라탄 7기분들 환영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7기 강의는 현묘의 마지막 실강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