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묘의 "좋은 질문입니다." (3) 고양이도 사주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안녕, 사주명리"의 현묘입니다. 

 

새침하지만 잠시 후 다리를 스치며 관심을 바라고  

 

까칠하지만 어느새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골골대는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의 전성시대입니다. 

 

 

저도 금동이라는 고양이와 16년을 함께 했습니다. 

 

저에게는 동생, 아이들에게는 삼촌이라고 불렸던 맹추 고양이가 고양이 행성으로 떠난지도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금동이와 함께 하면서, 고양이도 사주가 있을까? 

 

인류가 아닌 다른 생명체도 사주를 가지고 태어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도 사주가 있다면, 나와의 관계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요. 

 

고양이마다 성격이 다르고, 가족들 중에 유독 따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쩌면 사주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때마침, 6기 입문반 실강 수업에서 해당 질문이 들어와서 

준비했습니다. 

 

현묘의 "좋은 질문입니다." (3) 고양이도 사주가 있나요?

 

사주의 대전제에 대해 생각해보죠.

 

해당 시간에 태어난 인간은 그 시간의 의미로써 살아간다.”가 바로 사주의 대전제입니다. 

 

사주의 대전제는 시간이 분절되어 있고, 그 분절된 의미가 그때 태어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전제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분절되어 있다니..

 

그리고 그 의미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다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대중들은 전제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쉽게 사주를 미신, 신앙, 종교, 주술로 치부해 버리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사주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심지어 사주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조차 시간이 분절되어 있고, 이 의미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대 전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 전제에 대해 놀라고 전율하고 환희하고 감동하지 않으니, 

사주를 점술, 신앙, 문화, 종교, 마음수양의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맙니다. 

 

그러니 이성적, 합리적으로 추론하고 논증하려 하지 않고, 

 

가벼이 태도에 대해서 논하고, 

선과 악, 도덕과 윤리, 종교와 신앙으로써 접근합니다. 

 

사주의 대전제에 감동하지 않으니, 

쉽사리 전생, 귀신, 조상을 들먹입니다. 

 

기도하라고 하고, 수양하라고 하고,

선한 마음을 가질 것을

역술가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강요합니다. 

 

사주공부 대충해서

저자거리에서 도사 흉내 좀 내고 나서

자신감이 붙으면 절을 짓고 스스로 스님이라 칭하며, 군림합니다. 

 

종교와 사주에 모두 먹칠을 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으로 5분이면 사주를 볼 수 있는 시대,

AI가 사주를 봐주는 지금 이 시대에도 사주를 등에 엎고 사기치는 인간들이 넘쳐납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해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분절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앎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상식 선에서 사주를 이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귀신을 찾고, 조상을 찾고, 영험함을, 마음 수양을 찾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주는 귀신, 조상, 마음, 영험함과 거리가 멉니다. 

 

정말 단백하게 시간에 대한 통찰입니다. 

 

화의 시간에 태어난 사람을 화의 기운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게 전부입니다. 

 

여기에 무슨 귀신이 있고, 도덕, 선악이 있습니까.

 

이 이치를 공부하는 사람이 왜 신성한 전당에 올라가야 합니까?

 

도사는 "척 보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 봉양 잘하고, 자식 잘 키우고, 사회에서 자신의 일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제일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삶에 대한 철학이 갖춰집니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안목이 갖춰진 사람,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도사입니다. 

 

부모 자식 내팽겨치고 산에 틀어박혀 도덕경 읽고, 사주 공부하고 수염 기르는 사람이 더 통찰력이 있을까요?

 

아니면 부모 자식한테 치이고, 직장 생활하며 수없이 번뇌하고 회의하면서 삶에서 우뚝 선 사람이 통찰력이 있을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고, 겉으로 잰체하는 사람들은 모두 허당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사주 공부 한답시고 겉멋만 든 사람, 쉽사리 남의 인생에 대해 헛소리 하는 사람,도덕, 윤리, 선악, 종교적인 태도로 옮음을 떠드는 사람, 

 

모두 피해야 합니다. 

 

사주가 멋있는 것은, 

 

문화, 종교, 이념을 초월해서 공평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고도, 절기는 어떠한 변수로도 조작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기준입니다. 

 

그 기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멋있는 것이지

 

사주가 도덕적으로 옳아서 인간에게만 도움이 되서 멋있는게 아닙니다. 

 

 

고양이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한 글이 이렇게 진지해지는 이유는

 

"고양이도 사주가 있나요?"란 질문이 그렇게 간단한 질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사주를 바라보는 태도를 알려주는 소중한 잣대입니다. 

 

신앙으로 사주를 보고 있는지, 

 

이성과 합리로 사주를 보고 있는지 

 

이 질문을 던져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답변을 해볼까요?

 

"고양이도 사주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다시 사주의 대전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해당 시간에 태어난 인간은 그 시간의 의미로써 살아간다.”가 바로 사주의 대전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그 시간의 의미가 주어질까?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가르는 지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침팬지와 인간을 확실히 구분하지만, 외계인이 지구에 왔을 때 옷을 벗고 있는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외계인의 눈에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일 뿐입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는 98.5%의 유사도를 갖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수 만년이 지나면 인류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인류가 지구에 살았다는 흔적을 찾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만이 존엄하고, 특별하다는 생각은 시공간의 지평을 넓혀보면 철저한 오만일 뿐입니다.

 

사주의 전제가 맞다면, 당연히 모든 유기체(시작과 끝이 분명한 존재)는 존재의 시작점에 시간의 의미에 영향을 받습니다.

 

즉, 지렁이도 사주가 있습니다.

 

지렁이도 사주가 있다는 말이 불쾌하고 모욕적으로 들리신다면, 

 

당신은 사주를 종교와 도덕, 문화로써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사주공부는 합리와 이성이 아닌 관념과 도덕, 윤리로써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와 방식으로 공부를 해도 작은 성취는 이뤄낼 수 있지만

 

이런 태도로 공부를 하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10년동안 똑같은 수준에서 똑같은 말 "겸손하게 열심히 수양하며 살면 행복하다!" 는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해 스스로 제단 위로 올라가 사제나 선생의 옷을 입게 됩니다.

 

 

사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짓된 권위에 오염되지 않은 순순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화의 시간에 태어난 존재는 화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는 

 

순수하고도 오염되지 않은 정보, 

 

이 정보를 곱씹어보고 삶에 대입해보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 선악의 논리로 세상을 보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우주에 없습니다.

 

오로지 마땅한 것, 단순한 진실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것이고, 그 결과 뭔가의 변화가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도, 개도, 지렁이도, 모기도 모두 사주가 있습니다.

 

그들도 지구에 태어났고, 유기체이고, 시간의 의미망 안에서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보다 짧은 생애를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시주, 분주, 초주 등 더 세밀하게 나눠진 시간의 단위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겠습니다.  

 

또한 대운의 경우도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머무는 기간(평균수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금동이도 사주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금동이의 생일시를 모르지만, 우리 둘은 사주적으로 분명 좋은 합이었을 것입니다. 

 

굳이 사주를 봐야만 아나요?

 

일년을 기다린 벚꽃이 무서운 속도로 상경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벚꽃 아래에서 꼭 사진 찍으세요. 

 

을사년의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총총.

 

2025년 4월. 

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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